'산고 끝 타협' EU 첫 여성 행정수반 후보, 반대 벽 넘을까
사회·녹색당그룹, 반발…모국 獨정치권 "밀실정치의 승리" 성토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유럽연합(EU) 행정수반 격인 집행위원장 후보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이 어렵게 결정됐으나 유럽정치권 내 갈등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유럽의회 내 중도 좌파 사회당(S&D)그룹 및 녹색당(Greens/EFA)그룹뿐만 아니라 모국인 독일에서조차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과 집권 연정을 이루고 있는 중도좌파 사민당(SPD) 등이 "밀실정치"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폰데어라이엔 후보는 이달 중 유럽의회 인준투표에서 승리하면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의 뒤를 이어 11월 1일 EU 역사상 첫 여성 집행위원장에 오른다.
영국 가디언과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 벨레(DW)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2일(현지시간) 후보로 결정된 뒤 다음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본부를 찾아 유럽의회 제1당으로 소속그룹인 유럽국민당(EPP)그룹의 의원들을 만났다.
폰데어라이엔은 짧은 만남 동안 모국어인 독일어뿐만 아니라 유창한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쓰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대한 자신의 견해 등을 밝혔다.
그가 인준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으려면 유럽국민당그룹의 투표에 달렸다는 것이 가디언의 설명이다.
지난 2일 5년 임기가 시작된 제9대 유럽의회는 정원 751명 중 유럽국민당그룹이 182석으로 제1당이고, 사회당그룹이 154석, 중도 성향 리뉴 유럽(Renew Europe) 그룹이 108석으로 3대 정치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뒤를 이어 녹색당그룹 74석, 극우 성향 '정체성과 민주주의'(ID)그룹이 73석, 우파 성향 '유럽 보수와 개혁'(ECR)그룹이 62석으로 뒤를 잇고 있다.
폰데어라이엔이 후보로 결정되자 사회당그룹과 녹색당 그룹은 크게 반발했다.
사회당그룹은 소속 의원인 이탈리아 출신 다비드 사솔리가 전반기 유럽의회 의장으로 선출되기는 했으나, 자신들이 집행위원장 후보로 밀던 프란스 티머만스가 EU 정상들에 의해 거부당한 데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앞서 EU는 18시간의 밤샘 마라톤 협의 끝에 티머만스를 집행위원장 후보로 추천하기로 의견 접근을 봤으나, 티머만스는 이탈리아와 중부유럽 비셰그라드 4개국(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정상들의 반대 벽을 넘지 못했다.
특히 티머만스는 '법의 지배' 위반 문제를 놓고 EU 대표로 폴란드 및 헝가리 당국과 갈등을 빚어왔고, 두 나라의 강력한 반대로 집행위원장 꿈이 무산됐다.
티머만스의 대안으로 폰데어라이엔이 낙점됐다는 보도에 사회당그룹은 격분했다.
사회당그룹 지도자인 이라체 가르시아는 가디언에 "포퓰리스트 정부들이 단지 법의 지배와 유럽이 공유하는 가치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적임자를 배제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반발했다.
사회당그룹과 녹색당그룹은 유럽의회 선거결과와 집행위원장 선출을 연계하는 이른바 '슈피첸칸디다텐(대표후보)' 제도를 EU 정상들이 무시했다는 데도 불만이다.
일부에서는 폰데어라이엔 후보에 대해 국방계약 건과 관련해 정실주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사민당을 포함한 독일 정치권에서도 폰데어라이엔 후보 결정에 대해 "밀실정치의 승리"라든가 "웃음거리"라며 비난하고 있다고 도이체 벨레는 보도했다.
유럽의회 의원들이 지난 5월 선거에서 최대 의석을 얻은 진영에 집행위원장 자리를 주도록 EU 정상들에게 요구했으나, 제1당 유럽국민당그룹 후보인 만프레드 베버는 물론 제2당인 사회당그룹 후보인 티머만스도 정상들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베버는 메르켈 총리가 강력히 밀었으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정상들의 반대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메르켈 총리가 사민당을 설득하는 데 실패, 폰데어라이엔을 후보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28개 EU 회원국 정상 중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졌지만 사민당 측은 "선거 전 시민들에게 약속한 것과 다르다"며 격한 반발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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