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시즌제 드라마, 궤도 진입할까 불시착할까
과도경쟁 속 안정감 추구…배우·제작진 지속성 담보돼야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송은경 기자 = 외국에서만 보던 시즌제 드라마가 국내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국내 방송사들은 제작비 등 여러 한계에도 나름의 창의력과 팀워크를 발휘하며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라는 카테고리를 안착시키려 노력한다.
국내에서 시즌제 드라마가 유리한 부분과, 시즌제 드라마를 제작할 때 필수적인 요소들을 짚어본다.
◇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의 역사
국내 시즌제 드라마 시초로는 KBS 2TV '학교'를 꼽을 만 하다. 1999년 시작한 이 작품은 2017년 7번째 시즌까지 이어지며 조인성, 김우빈, 이종석, 장혁, 김래원, 김민희, 배두나, 하지원, 최강희, 이요원 등 지금은 톱스타로 군림하는 배두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최장수 시즌제 드라마는 시즌17까지 제작된 tvN '막돼먹은 영애씨'. 이 드라마가 롱런하는 힘은 2007년부터 올해까지 영애씨의 장기 연애사(史)와 결혼, 워킹맘으로서의 인생을 함께 지켜보고 겪은 '골수팬'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르극 채널을 표방하는 OCN은 '나쁜 녀석들', '신의 퀴즈', '보이스', '구해줘' 등 강렬한 색채의 시즌제 드라마들을 내놓으며 비교적 일찍 시즌제 드라마 시장을 선점했다.
최근에는 KBS 2TV '추리의 여왕'과 '동네변호사 조들호', MBC TV '검법남녀', SBS TV '낭만닥터 김사부',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등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들도 시즌제 드라마 제작에 열을 올린다.
이밖에 tvN '아스달 연대기'와 JTBC '보좌관' 등 무게감 있는 작품들도 시즌제 방식을 채택하며, '에이틴'과 '연애플레이리스트' 등 인기 웹드라마들도 궤를 같이하고 있어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관심도 쏠린다.
◇ "IP 안정성 확보에 유리…미디어 환경 재편 영향도"
전문가들은 급격히 증가한 드라마 편수와 그에 따른 과당경쟁, 그리고 미디어 환경 변화가 방송사들이 시즌제 드라마를 돌파구로 삼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짚는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최근 '방송작가' 159호에서 "톱스타와 인기작가, 거액을 투자해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검증된 콘텐츠와 캐릭터로 안정적 위치를 확보해 전작의 성공을 이어가는 게 당연히 유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역시 "시즌제 드라마는 콘텐츠 공급 과잉의 시대에 브랜드를 활용한 리스크 헤지(risk hedge, 위험요소 제거) 전략으로 매우 유용하다"라고 공감했다.
그는 이어 "지상파에서 케이블과 OTT(실시간 동영상 서비스)로의 드라마 향유 플랫폼의 변화는 개인별 취향을 중요시하는 현상을 반영한다. 시즌제 드라마 향유 특성과 비슷하다"라고 짚었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 고위관계자도 7일 통화에서 "방송사가 시즌제를 하는 이유는 하나의 IP(지적재산권)를 '멀티'로 써먹기 위한 전략구조"라며 "안정적으로 호응을 받은 작품일수록 시즌제로 제작하고 싶은 게 방송사 심리다. 시즌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꼭 가야 할 길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드라마 편수가 많지 않았기에 지상파 등이 굳이 시즌제를 할 이유도 없었고, 배우·작가와의 (재)계약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있어 시즌제를 도입하려고 해도 원활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환경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 "기획부터 차별화한 캐릭터와 스토리 확장성 담보해야"
이렇듯 최근 시즌제 드라마 제작이 활성화하지만 시스템이 정착하고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추리의 여왕', '동네변호사 조들호', '검법남녀' 등 여러 작품도 완전한 성공을 거뒀다고는 하기 힘들다.
시작부터 시즌제로 기획된 작품들이 아닌 데다가, 완전히 차별화한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평가도 아직은 이른 단계다. 전작의 출연진과 제작진 연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기획 단계부터 해당 아이템이 시즌제에 적합한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출연진과 제작진이 꾸준히 새 시즌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 관계자는 "이야기가 계속 재생산되고 뻗어 나갈 구조인가를 판단해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은 작품인데 전 시즌이 잘됐다고 무작정 시즌제로 갈 수는 없다. 특히 로맨스극은 커플이 완성되면 그다음에 할 얘기가 없다. 그래서 장르극 시즌제가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야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시즌제를 할 수 있는 배우, 연출자, 작가의 상태와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공 평론가도 "장기적인 종합조감도를 바탕으로 시즌별, 에피소드별 구성이 기획 단계부터 이뤄져야 한다"라며 "또 시즌제를 위한 지속 가능한 관리 체계를 수립해 작가, 배우, 감독 등 제작팀을 운영해야 한다"라고 했다.
박 교수 역시 "시즌제 드라마 문제가 문제 제기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라면서도 "스토리 월드의 단계별 구현과 그 과정에서 향유자의 참여와 체험에 기반한 팬덤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시즌제 드라마가 계속 시도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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