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재정 모범국' 네덜란드·벨기에도 건보 재정문제와 씨름

입력 2019-07-04 07:00
'의료재정 모범국' 네덜란드·벨기에도 건보 재정문제와 씨름

"의료보장 위한 보험료 인상 필요성 솔직하게 알리고 국민 설득해야"

(암스테르담·브뤼셀=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경제성장 둔화와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이용 증가 등으로 초래될 건강보험 재정문제에 골머리를 앓는 곳은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보험 방식의 의료보장체계 아래 비교적 든든한 재정 구조를 구축한 모범국가로 꼽히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도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재정 확보 문제와 씨름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민건강을 지키려면 의료보장을 확대해야 하고, 이를 재정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방법은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보험료 인상 같은 인기 없는 정책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을 극복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전문가들이 현명한 정치적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까닭이다.

◇ 주치의·인두제·본인부담금·총액예산제 등으로 재정지출 통제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환자의 의료이용 과정에서 우리나라보다는 더 엄격한 방식으로 의료재정이 새는 것을 막고 있다.

네덜란드가 채택한 첫번째 방안은 까다로운 의료전달체계다. 모든 환자는 1차 의료라 할 수 있는 주치의(GP, general physician) 진료를 거쳐야만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2차 진료(전문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대형병원으로 직행할 수는 없다.

최근에는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서 'E-헬스'로 환자 본인의 건강을 체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시도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쁜 주치의와 대면 접촉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서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건강상담과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네덜란드 민간보험자협회에서 언론홍보업무를 하는 코엔 베네캄프(Koen Venekamp)씨는 "IT 의료기술을 이용해 주민들에게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유용한 의료정보를 전달하고 나아가 원격의료로 의사와 언제, 어디서나 연결돼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데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필수적으로 제공되는 의료를 제외한 진료와 수술을 받을 때는 2019년 기준으로 연간 385유로까지 환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환자에게 의료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의식을 심어주고자 하는 취지다. 이 비용은 거의 해마다 올라가고 있다.

의사에게 지불하는 의료서비스 대가 관리도 엄격한 편이다.

주치의 진료에 대한 보상은 등록된 환자 1인당 인두제(Capitation fee per registered patient)에 따라 정부가 정한 인두제 수가로 지불한다. 정부가 1차 의료서비스 가격 결정에 깊이 관여하는 것이다.

2차 진료에 대해서도 미리 정해진 진료비를 주는 방식으로 보상하고 있다.

특히 의약품 가격은 오리지널뿐 아니라 제네릭(복제약)의 최대 소매가격을 약가법으로 관리하고 있다.

벨기에는 정부 사회부 산하의 질병장애보험공단(NIHDI)에서 아예 매년 건강보험 총예산을 결정해서 할당하는 총액예산제(Global Budgeting)를 시행하고 있다.

질병장애보험공단의 국제관계 커뮤니케이션담당인 크리스 세게르트(Chris Segaert)씨에 따르면 이를 통해 예상 예산 범위를 벗어날 때는 예산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고자 의사에게 지급하는 보상을 줄이든지, 환자에게 돌려주는 환급금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통제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달리 벨기에는 1차 의료를 의무화하지는 않고 곧바로 2차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저소득층을 제외하고 일반 환자의 본인부담금(개원의 25%, 왕진 35%, 전문의 40% 수준)을 비교적 높게 책정해 의료이용에 따른 비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특히 외래진료서비스에 대해서는 환자가 진료비를 전액 먼저 의사에게 지불하고 나중에 본인부담금을 제외하고 환자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환급받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의사의 처방 없이 입원하면 병실 유형과 상관없이 병실 차액을 물도록 하는 등 병원 이용도 까다롭게 하고 있다.

◇ "보험료 인상 불가피하지만 그만큼 많은 혜택 국민에 돌아간다"고 설득 필요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이렇게 의료곳간에서 빠져나가는 구멍을 틀어막는 등 상당히 강력하게 의료재정을 관리하지만, 인구 고령화와 신의료기술 발전, 신약 개발 등으로 헬스케어 지출이 증가하는 현실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실제로 네덜란드가 지출한 보건의료비(Health Expenditure)는 지난해 770억 유로로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했다. 인구 1천700만명의 중소규모 국가로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인구 1천100만명 정도인 벨기에도 2017년 보건의료비 지출 비중이 GDP 대비 10%로 상당히 많았다. 2017년 기준 GDP 대비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비 지출 비중은 7.6%였다.

문제는 앞으로 고령화 추세로 미뤄볼 때 보건의료비 지출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증가하는 의료비용을 충당하려면 사회보험 제도 아래서 해마다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지만, 이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국내의 경우, 지난해 만 19∼69세 성인 2천명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의 적정 보장률을 조사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미래 보건의료 정책 수요 분석 및 정책 반영 방안' 보고서는 사람들이 보험료 인상에 얼마나 거부감을 갖는지 잘 보여준다.

조사결과, 우리나라 국민이 희망하는 적정 보장률은 73%로 2017년 기준 보장률 62.7%보다 약 10%포인트 높았다.

보장률을 높이려면 건강보험료 추가 부담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부담 의사 조사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찬성하지만, 보험료 추가 부담은 반대한다'는 비율이 전체의 57.1%로 가장 높았다. '보장성이 확대된다면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할 의사가 있다'는 응답은 26.1%에 불과했다.

보험료 인상에 부정적인 여론과 정서는 네덜란드나 벨기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에라스무스 경영대학의 마르코 바르케비서 건강정책 스쿨 교수는 "네덜란드 의료보장 시스템은 다른 그 어떤 국가 제도보다 더 오래 유지되고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려면 매년 보험료는 결국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 국민처럼 네덜란드 국민도 헬스케어를 좋아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의료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돈을 더 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거부 정서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정치인과 정부의 정책당국자가 있는 사실 그대로 진실을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 보험 혜택의 범위를 넓히려면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고, 비록 보험료는 인상되지만, 보장성이 확대되면서 암 등 위중한 질병에 걸리더라도 적은 비용에 치료받는 등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건강보험료를 내고도 의료혜택을 보지 않아서 손해를 본 느낌이 든다고요? 아닙니다. 당신은 운이 더 좋은 것입니다. 왜냐면 병원을 이용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건강하다는 증거이니까요."

그가 기회 있을 때마다 강의시간이나 만나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얘기라고 한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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