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이후 37년만에 나타난 17세기 묘지, 국가에 기증
국립중앙박물관, '장밀헌집' 등 상반기 기증 유물 공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981년 전주유씨 5대 봉군묘를 이장할 당시에는 발견되지 않았다가 지난해 큰비가 내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전평군(全平君) 유심(1608∼1667)의 백자 청화 묘지(墓誌)가 국가에 기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유심 묘지를 비롯해 조선시대 서적과 북한 그림 등 6건 19점을 상반기에 기증받았다고 3일 밝혔다.
묘지는 망자의 행적을 적어 무덤에 묻은 돌이나 도판을 뜻하며, 유심 묘지 기증자는 전주유씨 춘호공파 유양석(92) 씨다. 이 묘지는 1686년에 제작했으며, 네모난 판에 유심의 가계·생애·관직 이력·자손·성품을 청화안료로 적었다.
유심은 선조 딸인 정휘공주와 전창군(全昌君) 유정량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묘지에 효자임을 알려주는 "부모가 병들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다"는 대목이 있다.
앞서 전주유씨 춘호공파 종친회는 1981년 유심과 그의 증조부이자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낸 춘호(春湖) 유영경, 조부 유열, 부친 유정량 묘를 이장할 때 찾은 명기(明器·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기물) 등 93점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수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유심 묘지와 명기가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며 "조선 중기 명문가 장례 풍속과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박물관이 이번에 기증받은 자료 중에는 첫 번째 북한 미술품인 선우영(1946∼2009)의 그림 '금강산 묘길상도'도 있다.
한승주(79)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 2006년 10월 윤이상음악제 참가를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작가에게서 직접 사들인 작품으로, 제작 시기는 2000년이다.
금강산 만폭동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묘길상(妙吉祥)과 주변 풍경을 세화기법과 진한 채색으로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한 이사장 부인인 미술사학자 이성미(80)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5책을 박물관에 건넸다.
정조 21년(1797)에 간행했으며, 유교 윤리 보급과 한글 활용 사례를 보여주는 자료다. 첫 번째 권에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故) 김원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제발문이 있다.
조선 영조 즉위에 기여한 인물인 송인명의 미간행 문집 '장밀헌집'(藏密軒集) 6책 1질은 그의 9대손 송재원(40) 씨가 기증했다.
송인명은 탕평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한 관료이지만, 문집이 없어 연구가 미진한 편이었다. '장밀헌집'은 상소문과 간이 상소문인 차자(箚子) 비중이 높아 송인명의 정치적 견해를 분석하기에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또 후손들이 1790년에 송인명 저작을 모아 한 글자씩 써서 문집 형태로 만든 자료라는 점에서 서지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박영호(64) 씨는 근대 서화가인 이도영이 완성한 '미불백석도', 이상범·노수현·지성채가 함께 그린 '합벽 화조도'를 기증했다. 이 그림은 지난해 11월 별세한 박씨 모친이 1970년대에 구매한 작품이다.
이 연구관은 "소중한 기증 자료를 영구히 보존하고 전시와 연구에 활용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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