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사건' 17년 만에 등장한 김대업…'사기-잠적-검거' 반복
2008년에도 국정원 사칭 사기 혐의로 도망 다니다 붙잡혀
병역비리 수사에 민간인 보조요원으로 참여했다 수사관 사칭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한국 정치사상 최악의 흑색선전 사례로 꼽히는 '병풍' 파문의 당사자 김대업(57) 씨가 사기 피의자로 다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김씨는 2002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아들 병역 비리를 거짓 폭로한 이후 수사관 자격 사칭 등 혐의로 복역한 바 있다.
2일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은 필리핀 이민 당국과 협의를 마치는 대로 현지에 수사관을 보내 김씨를 국내로 송환할 계획이다. 김씨는 정선카지노 사장 등에게 로비해 폐쇄회로(CC)TV를 납품하게 해주겠다며 관련 업자에게 2억5천만원을 받아챙긴 혐의(사기)로 검찰 수사를 받던 2016년 10월 필리핀으로 도주했다가 지난달 30일 붙잡혔다.
필리핀 현지에 파견 나간 '코리안 데스크(외국에서 일어난 한인 관련 사건을 전담하는 경찰 부서)'가 2017년 1월 검찰의 공조수사 요청을 받고 김씨의 소재를 추적해왔지만 김씨가 경찰 수사망에 걸려든 건 비교적 최근이다.
지난달 초중순 코리안 데스크 담당관인 권효상 경감에게 "김대업이 말라떼 인근에서 돌아다닌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말라떼는 앙헬레스와 함께 필리핀 내 대표적 한인 밀집 지역이다.
일대를 계속 탐문하던 권 경감은 지난달 30일 말라떼의 한 호텔에 김씨가 나타났다는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했다. 현지 수사 인력의 협조가 필수적이었지만 필리핀 이민청은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머뭇거렸다. 경찰청 관계자는 "코리안 데스크가 지속적으로 설득해 오후 4시께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 경감과 필리핀 이민청 직원들은 호텔 출입문 두 곳을 모두 지키고 있다가 눈치를 채고 달아나는 김씨를 30분 만에 손쉽게 붙잡았다. 검거 당시 김씨는 여권기한이 만료돼 불법체류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으로 도주한 범죄자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확인될 경우 범죄인인도 재판을 거치지 않고 현지 당국의 추방 조치만으로 국내에 데려올 수 있다.
김씨가 송환되면 우선 교도소에 수감돼 징역형을 살면서 사기 혐의에 대한 수사를 받을 전망이다. 김씨는 필리핀으로 도주할 당시 게임산업진흥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상태였지만 해외도피로 집행유예가 취소됐다.
군병원 행정업무 담당 부사관 출신인 김씨는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 "1997년 7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장남의 병역 비리 은폐를 위한 대책회의가 열렸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석 달간 검찰 수사 끝에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결론 났지만 선거 판세가 뒤집히지는 않았다.
김씨는 병역비리 수사팀에 민간인 보조 요원으로 참여하면서 수사에 도움을 줬다. 하지만 신문과정에 부당하게 입회하는 등 도를 넘은 활동 탓에 수사관 자격을 사칭한 혐의 등으로 이듬해 2월 구속기소됐다. 징역 1년10개월이 선고됐지만 2004년 10월 형기를 1개월 남기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출소한 이후에도 사기 등 범죄를 저질러 도망 다니다가 붙잡히기를 반복했다. 2007년에는 국가정보원 직원을 사칭해 초등학교 동창에게 2억원대 사기를 친 혐의로 경찰 수사 중 잠적했다가 이듬해 4월 경찰 일제 단속에 붙잡혀 쇠고랑을 찼다. 2014년 11월에는 불법 오락실을 운영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에게는 현재 10건의 수배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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