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넘어 정치·정책에까지 '상상력' 강조한 文대통령 의중은
"기존 문법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과감한 상상력 주문
"정치에도 상상력 부족"…여야 난맥상 타개 위한 '통큰' 행동 촉구한 듯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역사적인 남북미 회동을 성사시킨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는 물론 정치, 정책 분야에도 파격적인 상상력을 주문해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2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세계를 감동시킨 북미 정상 간 판문점 회동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SNS를 통한 파격적 제안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과감한 호응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 파격적 제안과 과감한 호응은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라면서 "기존 외교 문법 속에서 생각하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발언은 이번 판문점 회동이 기존의 체제나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향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참모들 역시 과감하고 선제적인 행동으로 평화프로세스에 속도를 내줄 것을 강하게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시부터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외교 역량이 우리 국력이나 국가적 위상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며 "국회, 정치적 상황, 남북 분단 등 여러 이유로 외교부가 상상력을 펼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잇따른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꾸준하게 대화의 손길을 내밀며 김 위원장의 용단을 끌어내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대화 여건을 마련해 회담을 추진하는 등의 절차도 중요하지만 남북미 정상의 비핵화 대화 의지가 강하다는 점은 분명한 만큼, 문 대통령은 이번 판문점 회동처럼 정상들의 전격적인 결정을 유도할 과감한 상상력을 주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의 발언은 비핵화 정세 속에서 교착 상태인 북미 간 비핵화 대화를 재개하는 데 공을 들여온 자신의 '촉진자적' 노력을 간과해 온 일각의 목소리에 대한 반론으로도 읽힌다.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와 파격적인 상상력만 있다면 북미 간 대화의 교착 속에 나오는, '과연 그게 가능하겠는가'라는 냉소적인 분석도 불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발언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런 상상력을 정치 분야에도 당부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치에도 부족한 것이 상상력"이라면서 "과거 정치 문법과 정책을 과감히 뛰어넘는 풍부한 상상력의 정치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여야가 진통 끝에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지만 북한 어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야당이 요구한 '경제원탁토론회' 개최 여부 등을 놓고 완전한 정상화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의 처리도 늦어지고 있다.
그보다 앞서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문제 등을 놓고 국회가 석 달 가까이 공전하며 민생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상황은 문 대통령으로서는 '기존의 문법'에 사로잡힌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정치권에 주문한 상상력은 여야 간 대결 프레임을 넘어서서 민생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의 양보와 같은 '통 큰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민생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 부처에도 "선의를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서서 과감한 정책적 상상력을 좀 더 풍부하게 발휘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미세먼지 대책 수립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공무원들에게 상상력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안정적 지위에 만족하지 말고 적극적인 태도로 경제와 민생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 주력해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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