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파 대표화가는 마티스?…출발부터 함께한 '이 사람'도 있다
마티스와 함께 '색채혁명' 꾀한 앙드레 드랭…반세기 만에 재조명
2010년 경매서 286억 낙찰·2017년 퐁피두센터 특별전 등
세종문화회관 야수파 걸작전 통해 국내서도 주목받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그는 예술의 개척자다. 모던아트에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신대륙으로 득을 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다."
유명 작가이자 수많은 예술인의 대모를 자처했으며 손꼽히는 컬렉터이기도 했던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이 1930년대 말 언급한 '그'는 앙드레 드랭이다.
1880년 태어나 파리 화단에서 활동하다 1954년 세상을 떠난 드랭은 국내에서 아직 낯선 존재다. 그는 앙리 마티스(1869∼1954)와 함께 현대미술의 출발점인 야수파를 창시했으나, 어느새 잊힌 존재가 됐다.
21세기 들어 드랭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중이다.
파리의 미술상 앙브루아즈 볼라르 소장품이던 드랭의 '콜리우르의 나무들'(1905)은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천630만 파운드(약 286억5천만 원)에 팔려나갔다. 퐁피두센터가 2017년 10월부터 4개월간 드랭 특별전을 대대적으로 연 것을 비롯해 그를 집중 소개하는 전시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막한 전시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을 통해 알려졌다. 프랑스 트루아현대미술관 소장품을 바탕으로 한 이번 전시는 야수파와 입체파를 아우르지만, 다채로운 작업을 선보인 드랭에 가장 시선이 집중됐다.
드랭과 마티스는 1905년 전후로 지중해 연안 콜리우르에서 함께 지냈다. 영국 테이트미술관에 소장된 두 사람이 서로를 그린 초상화는 강렬한 원색을 거칠고 빠른 붓질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콜리우르 작업이 중심이 된 이듬해 파리 '살롱 도톤' 전시는 이들 무리에게 당장의 혹평과 훗날의 명성을 안겨다 줬다.
인상파가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을 포착해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면, 야수파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작가 자신이 원하는 색채를 씀으로써 색채 혁명을 꾀했다. 3년여 존속한 야수파가 현대미술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여성의 피부를 초록색과 적황색, 진홍색 등의 물감으로 마구 칠한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1905)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양 근현대미술에 정통한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형태와 선을 중시하던 서양미술이 색채를 중시하게 되는 전환점이 야수파"라면서 "이를 이끈 두 사람이 마티스와 드랭이었고 당대 드랭은 마티스 못지않은 작가였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된 '빅벤'도 드랭 작품이다.
미술상 볼라르 지원을 받아 런던으로 향한 드랭이 1906∼1907년 완성했다. 작열하는 태양이 대낮 런던을 푸른 빛으로 뒤덮었다. 윌리엄 터너 '영국 국회의사당 화재'(1834), 클로드 모네 '런던, 안개 속에 비치는 햇살 아래 의회당'(1904) 등 런던 정경을 담은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단순한 풍경 재현을 넘어 새로운 런던의 공기를 담아내려 한 드랭의 열망을 느낄 수 있다.
공원 풍경을 담아내면서 진홍색과 초록색을 병치한 '하이드 파크'(1906)에서는 색채 사이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전시에는 드랭의 콜리우르 시절 자유분방한 색채 실험을 보여주는 작품 이미지들도 함께 놓여 이해를 돕는다. '오케스트라, 음악가들'(1905∼1906), '여자아이들'(1905∼1906) 등에서는 생기가 느껴진다.
드랭은 당대 문화예술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활약했다. 세종미술관 전시 출품작이 속한 '레비 컬렉션' 또한 드랭과 가까이 지낸 컬렉터 피에르·드니스 레비 부부가 평생 수집한 미술품이다.
전시 말미에 자리한 드랭 작품들은 피터르 브뤼헐 풍속화가 떠오를 정도로 딴판이다. 드랭이 전 유럽을 덮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전통으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그는 1941년 독일에서 전시를 연 일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나치에 부역했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한동안 은둔하던 말년의 드랭은 미술시장에서도 점점 잊혔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를 두고 다프네 카스타노 트루아현대미술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 도록을 통해 "'나치의 협력자'라는 것은 오해"라면서 "드랭은 당시 여러 작가와 여행을 다녀온 후 독일의 강요로 전시회에 참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스타노 큐레이터는 "20세기 초반 위대한 현대미술가 반열에 첫 번째로 올랐던 드랭이 저평가받게 된 점이 매우 아쉽다"라면서 "최근 드랭을 재조명하는 활동이 빈번해지면서 현대미술 역사가 다시 쓰일 것이 기대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현대미술 개척자' 드랭을 만나는 세종미술관 전시는 9월 15일까지.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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