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 드라마 뒤엔 '예측불허 승부사' 북미정상 '톱다운 케미'
'리얼리티TV쇼 방불' 반전·파격 연속…정상간 직접소통 'DMZ 회동' 이어질지 주목
트럼프, '깜짝 월경' 가능성까지 열어둬…북한땅 밟는 첫 美대통령 되나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북미 간 비핵화 대화가 북미 정상 간, 나아가 남북미 정상간 'DMZ 번개 회동'이라는 전대미문의 역사적 사건이 성사되느냐의 문턱까지 오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인 29일 오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에서 '깜짝 제안'을 했고, 이에 북측이 5시간 15분 만에 최선희 외무성 제1 부상을 통해 긍정적 반응을 발신하면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저녁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찬을 하기 직전 북한과 접촉을 하고 있음을 공식 확인하며 DMZ 방문이 "정말 흥미로울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성사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미 3자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서도 "지금 작업을 하고 있으니 지켜보자"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트럼프 대통령의 DMZ 방문이 예고된 30일까지는 하루가 채 남아 있지 않아 실제 현실화 여부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극적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현재 상황에까지 이르는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라는 두 정상의 '캐릭터'와 '케미'(궁합)가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즉흥적이고 예측불허의 승부사인 두 정상의 '톱다운 케미'가 없었다면 현재 펼쳐지는 '리얼리티 TV쇼'를 방불케 하는 파격과 반전의 순간들 자체가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인 셈이다.
지난 연초의 '핵 단추 크기' 설전으로 대변되는 거친 '말 폭탄 주고받기'로 한때 전쟁의 위기까지 처했던 두 정상은 역사상 첫 북미 정상 대좌이자 '세기의 핵 담판'으로 기록된 지난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70년 적대관계에 전환점을 마련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8개월 여 만에 이뤄진 지난 2월 27∼28일 2차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은 이른바 '영변+α'로 일컬어지는 비핵화 조치 및 이에 대한 상응 조치를 둘러싼 북미 간 눈높이 차이로 '노딜'이라는 뼈아픈 결과로 이어졌지만 수개월간의 교착·긴장 국면을 거쳐 북미는 멈춰선 한반도 비핵화 시계를 다시 돌아가게 할 커다란 문 앞에 서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비마다 막힌 부분을 뚫으며 돌파구를 마련한 건 북미 정상의 '톱다운 외교'였다.
지난해 6·12 1차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 위기에 처했을 때 벼랑 끝에서 이를 다시 살린 것도 미국 땅을 밟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편에 들려온 김 위원장의 친서였다. 그 뒤 북미 정상은 여러 채널을 통해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는 '친서 외교'를 통해 대화의 끈을 이어갔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2차 방미길에 오른 김 부위원장을 통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고, 이는 2월 말 2차 하노이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하노이 핵 담판 결렬 이후 북미는 극심한 대치 관계를 이어갔지만, 이 기간에도 정상 간 '케미'는 무너지지 않았다. '하노이 노딜'로 정상간 담판에만 의존한 톱다운 방식의 한계가 노출되면서 '바텀업'(실무자간 논의를 거쳐 정상이 최종 합의하는 방식)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미 조야에서 적지 않게 제기됐지만 닫힌 문을 다시 여는 데는 역시 북미 정상의 '톱다운 소통'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때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김 위원장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북한이 두 차례 단거리의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조차도 그 의미를 축소하며 계속 '올리브 가지'(화해의 몸짓)를 내밀었다.
연말 시한을 제시, '새 계산법'을 요구해온 북한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슈퍼 매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맹비난하며 대미 압박 수위를 높여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만큼은 '분리 대응 전략'을 구사하며 선을 넘지 않았다.
북미 간 살얼음판 속에서도 두 정상이 이어온 신뢰의 끈이 가시적 모멘텀을 마련한 것은 '싱가포르 1주년'을 앞두고 이달 들어 양측간에 주고받은 친서 외교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만 73번째 생일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축하를 겸한 친서를 보냈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에 답신으로 화답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김 위원장 친서의 '아주 흥미로운 대목'과 북측이 소개한 트럼프 대통령 답신의 '흥미로운 내용'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가운데 3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의 기대감도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에 '3차 정상회담'에 대한 거론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어느 시점에 회담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다.
'거래의 달인'을 자처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 방문지인 한국을 향하는 당일인 29일 김 위원장에게 'DMZ 번개 회동'을 전격 제안하며 또 한 번 '상상력의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 승부수를 던졌다. 이번에도 그 발신 통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찾는 트윗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번 순방 기간 김 위원장을 만나지 않을 거라고 선을 그었던 점 등에 비춰 '즉흥적 제안'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지만, 일각에서는 사전에 준비된 '이벤트'가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북미 정상이 '분단과 대결'의 상징이었던 DMZ에서 다시 손을 맞잡는다면, 그리고 문 대통령까지 참여하는 남북미 3자 회담으로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제 'DMZ 회동'이라는 파격 이벤트가 성사될지는 공을 넘겨받은 김 위원장의 결심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위원장이 만날 의사가 있더라도 시간상 촉박함에 따른 의전 문제 등 현실적 벽이 가로막을 가능성은 없지 않다.
만남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비핵화 문제에 대한 북미 간 간극을 좁히는 것은 실무협상 등 '긴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회동이 성사돼 북미 정상 간 신뢰를 확인하는 장면은 비핵화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는 큰 발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설사 회동이 성사되지 못하더라도 북미 정상이 지척에서 신뢰를 재확인하고 만남에 대해 긍정적 신호를 주고받은 것만으로도 북미 대화 재개 동력을 되살리는데 의미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이 자신의 트위터 피드를 "팔로우하고 있다"고 두 사람의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DMZ에서 김 위원장을 만난다면 DMZ를 넘어 북한 땅을 밟을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매우 편안하게 그렇게 할 것이다. 문제없다"며 '깜짝 월경'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현실화한다면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는 셈이 된다.
두 정상이 '단 하루'라는 시간상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적 순간'을 연출할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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