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지각에 새벽 회담한 한러정상…文대통령 "초유의 심야회담"(종합)
푸틴 111분 지각해 자정 넘겨 회담 시작…'외교결례' 지적 나와
정부 관계자 "러, 상황 불가피성 설명" 靑 "'결례'의 문제는 아냐"
푸틴, 2017년 34분, 2018년 52분 늦어…文대통령과 5차례 회담 중 3번 지각
(오사카=연합뉴스) 이상헌 박경준 기자 =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것으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9일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도 두 시간 가까이 늦게 나타났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오사카(大阪)를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애초 28일 오후 10시 45분에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러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푸틴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예정된 종료 시각을 훌쩍 넘겨 이어지며 한러 정상의 만남도 그만큼 뒤로 미뤄졌다.
발단은 두 건의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진행된 G20 정상 문화공연 및 만찬이었다.
오후 9시 30분에 끝날 예정이었던 문화공연과 만찬이 한 시간 정도 길어진 것이다.
그 결과 오후 10시 15분에 시작됐어야 할 프랑스와 러시아 간 정상회담은 마크롱 대통령이 회담장에 도착한 오후 10시 55분이 돼서야 시작됐다.
푸틴, 문 대통령 만나 "김정은, 대북 안전보장이 핵심" / 연합뉴스 (Yonhapnews)
당초 두 정상은 30분간 회담하고 10시 45분에 이를 마칠 계획이었으나 이 회담은 자정을 넘겨 29일 새벽 0시 20분까지 85분간 이어졌다.
한러 정상회담은 결국 예정된 시각을 111분을 넘긴 29일 새벽 0시 36분에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측은 청와대와 우리 정부 측에 상황의 불가피성을 계속 설명했고, 숙소에서 대기하던 문 대통령은 프랑스·러시아 정상회담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은 후인 0시 25분께 출발해 회담장에 도착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애초 28일 오후 늦은 시각으로 예정됐던 회담이 자정 넘어 시작해 '새벽회담'이 된 셈이었으나 푸틴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는 없었다.
이를 두고 회담장에 늦게 도착한 마크롱 대통령도, 문 대통령이 기다리는 것을 알고도 회담을 길게 이어간 푸틴 대통령도 외교 결례를 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으나 청와대와 정부는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국제회의를 하다 보면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라며 "만찬의 경우 정상끼리 대화하면 행사를 마칠 수 없는데, 이는 상황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양자 간 예의를 지키지 못했다는 '결례'의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전체적인 일정이 순연돼 정상회담도 늦춰진 것"이라고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의 사과가 없었던 것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오늘 상황을 양측이 긴밀히 소통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양해를 구했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회담에서 추가적인 사과가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양국 중 어느 한쪽에서라도 회담을 아침으로 미루자는 제안이 나왔는가'라는 물음에 그는 "늦어도 반드시 회담하자는 양측의 의지가 강했다"며 그런 제안은 없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양측 참모들이 배석한 채 45분간 확대 회담을 한 뒤 문 대통령에게 별도의 단독회담을 요청, 8분간 더 회담했다. 회담은 새벽 1시 29분에 종료됐다.
회담을 마치고 나온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웃으면서 "사상 초유의 심야(새벽) 정상회담인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늦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17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계기에 이뤄진 두 정상의 첫 번째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34분 지각했다.
2018년 6월 문 대통령의 러시아 국빈방문 때는 푸틴 대통령이 공식 환영식에 52분이나 늦으면서 이어진 정상회담도 40분 늦게 시작됐다.
푸틴 대통령은 2013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과 2016년 9월 러시아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 때도 각각 40분, 1시간 45분이나 지각했다.
푸틴 대통령은 다른 국가 정상들과의 회담에도 늦는 사례가 적지 않아 '지각 대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2014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는 4시간을 늦었고, 2016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는 2시간을 늦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아세안(ASEAN) 정상회의 계기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 당시 예정된 시각보다 5분 일찍 푸틴 대통령이 회담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honeybee@yna.co.kr,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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