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KBS 라디오 '한국어 따라잡기' 고정 출연 펜쿠 씨
"우선 많이 듣는 게 중요하죠"…"루마니아 알릴 수 있어 보람"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한국어가 어렵다고요? 저를 따라 해보세요. 한국어에 귀를 많이 노출하는 게 최고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더라도 일단 많이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가 기억하거든요. 나중에 필요할 때 저절로 그 기억이 떠오릅니다."
목요일마다 KBS 제3라디오(AM 1134㎑, FM 104.9㎒) '공감 코리아, 우리는 한국인'(월∼토 오후 3∼4시)의 '한국어 따라잡기' 코너에 고정 출연하고 있는 실비아 펜쿠(25) 씨는 "루마니아에 있을 때 자주 K팝을 듣고 한국 TV 드라마를 본 게 한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공감 코리아…'는 주한 외국인과 귀화인에게 생활 정보 등을 제공하고 한국인에게도 다문화에 관한 이해를 높이는 프로그램. 펜쿠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한국말 따라잡기'에서 진행자 유지철 아나운서(KBS 한국어연구부장)와 함께 상황별 한국어 사용법, 외국인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높임말, 한국인에게도 알쏭달쏭한 발음, 하루가 멀다고 새로 생겨나는 신조어 등을 소개하고 있다.
27일 오후 생방송을 끝낸 뒤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만난 펜쿠 씨는 178㎝의 훤칠한 몸매답게 막힘없이 시원시원하게 말문을 열었다. 가끔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는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대답하는 센스도 발휘했다.
"매주 방송국에 와야 하니 시간에 쫓길 때가 많아요. 그래도 저처럼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으니 보람이 큽니다. 청취자들께 제가 태어나서 자란 루마니아를 알리는 기회도 있고요. 제 방송을 잘 들었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뿌듯해요."
연출자 박성철 PD는 "라디오 고정 출연이 처음인데도 경험자 못지않게 자연스럽게 방송을 잘할 뿐만 아니라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스튜디오 분위기를 늘 환하게 만든다"고 칭찬했다.
펜쿠 씨는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남쪽으로 150㎞ 떨어진 소도시 컬리리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고 외국어 배우는 걸 좋아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빅뱅의 노래를 들려줘 그때부터 한국에 관심을 품었어요. 그전까지는 한국을 전혀 몰랐죠.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었고요. 루마니아 외국어대에 진학해 프랑스어와 체코어를 전공하다가 한국 정부 장학생으로 뽑혀 2015년 한국으로 건너왔죠."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운 뒤 2016년 고려대 미디어학부에 입학해 커뮤니케이션과 PR를 전공하고 있으며 이중전공으로 국제학부 학사과정도 밟고 있다. 현재 중국어도 배우고 있는데, 내년 2월 졸업 후 중국으로 유학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어 외로울 때가 많죠. 언어와 문화가 달라 적응하기 힘든 적도 있고요. 그래도 한국에 온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한국에는 좋은 점이 너무 많거든요. 한국인 친구들과 외국인 유학생들이 제게 잘해주는 것도 고맙죠."
한국의 장점을 꼽아 달라고 하자 깨끗한 화장실, 쾌적한 지하철, 어디서나 터지는 와이파이, 갈비탕·삼계탕·설렁탕 등 맛난 음식, 산이 많아 아름다운 자연, 한국인들의 따뜻한 정 등을 열거하며 그칠 줄 모른다.
가본 곳 중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묻자 "독도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울릉도가 참 아름다웠다"면서 "아직 제주도를 못 가봤는데 한국에 있는 동안 꼭 가볼 생각"이라고 답했다.
외국인이라서 차별받은 경험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지에서 온 친구들한테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우간다에서 온 친구는 지하철을 타는 게 너무 싫대요. 자리에 앉으면 아무도 옆에 안 앉으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하더군요. 중국인 친구는 상점에 가면 꼭 영어를 써요. 한국인들은 저처럼 서양인이 한국어를 서툴게 하는 건 너그럽게 봐주지만 동양인이 한국어를 제대로 못 하면 무시한대요."
"한국인들의 습관 가운데 이해가 안 가는 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한 살만 더 많아도 언니나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라며 "그래서 동생들의 이름은 다 아는데 언니 오빠들의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펜쿠 씨는 학업에 바쁜 틈을 내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방학 때마다 보육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가 하면 공익재단에서 개발도상국 출신 이주민을 돕는 일도 한다. 서울시 강동구의 외국인 인턴십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지난해 11월에는 서울시 명예시민 22명에도 뽑혔다.
한국에 거주하는 루마니아인들의 모임에도 가끔 참석한다. 하지만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아 모일 일이 많지 않고, 유학생도 대부분 단기 과정의 교환학생이어서 유학생회도 없다고 한다.
펜쿠 씨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을 많이 배워 고향 친구들에게 알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에 못지않게 한국인들에게 루마니아를 알리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여긴다.
"한국인들에게 루마니아에 관해 알고 있는 걸 물어보면 대부분 아무것도 없대요. 나이 든 사람 일부가 체조선수 코마네치를 기억하거나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떠올리죠. 루마니아도 역사가 깊고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예요. 트란실바니아 지방은 드라큘라의 고향으로 유명하죠. 그런데 한국인들은 동유럽을 가도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만 들러서 속상해요."
hee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