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여자수구 대표팀 "열심히 하는데…시간이 너무 없네요"

입력 2019-06-28 08:01
사상 첫 여자수구 대표팀 "열심히 하는데…시간이 너무 없네요"

헝가리 등 강호들과 한팀 편성…연습 기간은 고작 '한 달 반'



(수원=연합뉴스) 박재현 기자 =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하는데…대회까지 남은 시간이 너무 부족하네요."

사상 최초로 꾸려진 한국 여자 수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홍인기 코치는 아쉬움을 털어놨다.

여자 수구대표팀은 27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체육고등학교에서 경기체고 남자 수구 선수들과 연습 경기를 가졌다.

결과는 1-30, 혹은 1-40 정도의 대패였다. 세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표팀은 무수한 골을 내줬다.

하지만 홍 코치의 표정은 밝았다. 전날 연습 경기에서 0-50 정도의 스코어로 패했던 것에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번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 여자 수구 종목에 개최국 자격으로 사상 처음으로 출전한다.

수구는 국내에서 낯선 종목이다. 유럽과 북미, 호주에서는 인기가 상당하지만 한국에서 수구를 알고 있거나 직접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여자 수구대표팀이 없었다. 여자 수구 전문 선수도 전무했다.

대한수영연맹은 지난달 26일 선발전을 통해 광주 대회에 출전할 여자 수구대표팀 13명을 뽑았다.

선수들 대부분이 경영선수 출신이었다. 성인 선수는 두 명뿐이었고 11명은 중·고등학생이었다.

대표팀은 헝가리, 캐나다, 러시아와 B조에 편성됐다. 세팀 모두 우승 후보로 꼽히는 강팀이다.

수구 공을 잡아본 적도 없는 선수들은 고작 한 달 반의 연습 후 세계 최강팀들을 상대해야 한다. 시간이 너무 없다.



대표팀 선발이 늦어진 것은 수구 남북단일팀에 대한 논의 때문이다.

수영선수권에서 사실상 유일한 팀 종목이 수구였기 때문에 대회 조직위는 전부터 북측의 수구 종목 참가를 추진해왔다.

북한에는 수구 전문팀에서 훈련한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합류가 실질적인 전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개막일이 가까워졌으나 북측의 대답은 없었다. 연맹은 급히 수구대표팀을 선발했지만, 이미 시기는 많이 늦어진 후였다.

본선에서 1승은커녕 한골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여자 대표팀을 맡을 사령탑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홍인기 코치는 "처음에 코치직 제의를 받고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 컸기 때문에 선뜻 수락하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홍 코치와 함께 선수들을 지휘하고 있는 진만근 코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습 기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코치직을 맡기가 많이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런데도 이들이 결국 지휘봉을 잡은 것은 수구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두 코치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수구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코치직을 수락했다"고 입을 모았다.

대표팀은 2일부터 진천 선수촌에 입촌해 합숙 훈련을 하고 있다.

연습 환경은 녹록지 않다. 한정된 연습 공간을 나눠 써야 하는 상황에서 메달권이 아닌 수구대표팀은 상대적으로 선호되지 않는 연습시간대를 배정받았다.

진 코치는 "새벽 5시부터 7시 반까지 오전 훈련을 진행하고, 오후 1시부터 3시 반까지 오후 훈련을 진행한다"며 "아무래도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훈련시간이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연습시간 확보도 어렵다.

학생인 선수들은 선수촌 내에서 자율학습 형태로 의무 교육시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팀 분위기는 좋았다.

만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선수들은 휴식시간마다 장난을 치며 함께 어울렸고, 코치들과도 스스럼없이 소통했다.

홍 코치는 "선수들이 수구를 정말 좋아하고, 너무 열심히 한다"며 "수영을 했던 선수들이라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고 제자들을 치켜세웠다.

진 코치도 "이달 초만 하더라도 공을 제대로 못 잡던 선수들이 이제는 얼추 모양새가 나온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연습 중간중간마다 함께 외치는 '여자 수구 파이팅!'이라는 구호도 선수들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했다.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안타까운 마음도 커졌다.

홍 코치는 "이 선수들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발전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며 "전지훈련은 물론이고, 다른 여자팀과 연습 경기도 한 번 못 해본 선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진 코치 역시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로 훈련에 임해주는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

대표팀은 14일 헝가리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다.

두 코치는 "경기 결과를 떠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대회를 끝으로 여자 수구팀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이후 다른 대회들에 좀 더 준비된 모습으로 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trau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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