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침하러 가니 고객이 나체"…가정방문 노동자 증언대회
도시가스·수도 점검원·사회복지사 등…"'2인1조' 제도장치 마련해야"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가스 검침을 위해 고객의 집에 들어갔더니 고객이 나체 상태였습니다."
"상담을 위해 찾아갔다가 성관계는 자주 하느냐는 질문을 듣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혼자서 고객의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 '가구방문' 노동자들이 업무 중에 성희롱이나 폭행 등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2인 1조 근무 등 법·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간담회실에서 열린 '가구방문 노동자 인권침해 증언대회'에서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수도검침원, 사회복지사 등이 실제 당한 피해 사례가 쏟아져나왔다.
도시가스 안전점검원인 김정희 씨는 "업무 특성상 고객의 집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팬티를 입고 문을 연다든지 나체로 문을 연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며 "남자 고객이 성기를 몸에 비벼 놀라 돌아봤더니 한 번 안아달라고 했다는 피해 사례도 들은 적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회사에 피해 사실을 보고하자 별다른 조처 없이 '호루라기'를 지급받았다며 황당해했다.
수도 검침원인 최숙자 씨는 "검침을 위해 골목에 들어갔는데 노출증 환자와 맞닥뜨려 너무 놀라 도망간 적이 있었다"며 "이후에는 주말에 남편과 함께 검침을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단수를 앞둔 집에는 고객들이 검침원들에게 죽겠다거나 책임지라고 하기도 하고, 칼을 꺼내와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재가요양보호사 이건복 씨는 "요양보호사는 환자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 뭐든지 다 해야 하는데, 이용자 한 명 한 명이 고객이다 보니 피해를 보아도 제대로 대처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용자 중에는 치매와 관련된 분들이 많아 성희롱 때 폭행, 폭언이 동반되기도 하고 감정 제어가 안될 때는 흉기를 들고 나타나기도 한다"며 "소속 기관에 피해를 보고하면 '놀라셨겠다'고만 하고 별 대응도 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적어도 2명 이상이 함께 찾아가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혼자 피해를 당하는 경우 상대방이 '안했다'고만 하면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요양보호사의 안전과 서비스이용자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2인 1조 근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이현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작년에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처'를 사업주의 의무사항으로 추가한 산업안전보건법(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산업안전보건법을 더 강제력있게 감시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언대회에 참석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이 2인1조 등 실효성 있는 조치를 요구하지만 인력·예산을 이유로 사용자들이 거부하는 일이 다반사"라며 "더 실효성 있는 가구방문 노동자에 대한 안전조치가 이뤄지도록 법·제도 개선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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