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한 증거수집' 무죄선고 잇따라…권성동 대표적 사례
산업부 압수수색 과정서 증거 별건 수집…"영장기재 혐의와 무관"
법원, 검찰 수사관행 제동…"압수수색 신중히 진행해야"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임순현 기자 = 검찰이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을 채용비리 혐의 외에 별건으로 기소한 사건에 대해서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를 계기로 검찰이 부당하게 수집한 증거를 활용해 수사하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7일 법원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권 의원을 강원랜드 사외이사 지명에 위법하게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를 적용해 기소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 사건의 본체와는 별도로 검찰이 이른바 '별건 수사'를 통해 재판에 넘긴 내용이었다.
검찰은 권 의원이 사외이사 지명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2018년 3월 산업통상자원부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에서 찾았다. 그러나 법원은 이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보고 관련 혐의에 무죄 판단을 내렸다.
법원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당시 수사 대상이 된 사안과 별개로 수집된 증거물과 관련해 "압수수색 영장 발부 사유로 된 범죄혐의와 무관한 증거를 압수했을 경우 이는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본다.
다만 "압수수색 목적이 된 범죄나 이와 관련된 범죄의 경우에는 압수수색의 결과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며 예외적으로 증거력을 인정한다.
이 때문에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범죄혐의와 객관적 관련성이 있는 증거물이라면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한다. 문제는 수사 중인 범죄와 관련이 있다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압수물을 수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 의원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제가 된 권 의원의 별건 혐의는 권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공무원들을 압박해 자신의 고교 동창인 김 모씨를 강원랜드 사외이사로 지명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2014년 3월 강원랜드 사외이사로 선임된 김씨가 경영 관련 경력이 전혀 없고, 음주운전·폭력 전과가 있어 사외이사로 부적격한 인물인데도 위법하게 사외이사로 지명됐다고 보고, 2018년 3월 산업부 기획조정실 등을 압수수색 했다.
이 과정에서 수집된 산업부의 업무인계서를 권 의원이 김씨의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불법개입한 증거라며 재판부에 제출했다. 업무인계서는 산업부에서 처리 중이거나 추진하려는 산하 공공기관의 임원 인사업무를 종류·직위별로 구분해 정리한 파일이다. 검찰은 이 증거로 인사청탁 정황을 증명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순형)는 검찰과 생각이 달랐다. 업무인계서가 산업부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범죄혐의와 무관하게 압수된 별개 증거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범죄 혐의사실 또는 그와 관련된 범죄의 범행동기와 경위, 범행의 수단과 방법, 범행의 시간과 장소 등을 증명하기 위한 간접증거나 정황증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결국 권 의원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된 만큼 법원은 증거력을 부정했고,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사유로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또 있다.
서울고법 형사2부(차문호 부장판사)는 27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방위사업체 A사 직원 6명에게 1심처럼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결정적 이유는 권 의원 사건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이 제출한 핵심 증거들이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판단해서다.
퇴역 군인인 이들은 방위사업청 소속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군사기밀을 빼냈다는 혐의로 2013년∼2017년 기무사와 국방부 조사본부의 조사를 받았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2014년 11월 처음 수사에 착수했다.
조사본부는 뇌물공여자로 의심된 A사 직원들이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제출하지 않자 '방사청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증거를 잡겠다며 영장을 발부받았다.
조사본부는 이 영장으로 A사 직원들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영장에 적힌 혐의와 무관한 컴퓨터 외장하드와 업무 서류철을 뭉텅이로 압수했다.
이와 별도로 A사 직원 B씨의 군사기밀 유출 의혹 사건을 수사한 기무사는 조사본부에서 '뇌물 수사'를 위해 압수한 자료 중 B씨가 작성한 문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조사본부에 찾아가 해당 자료를 당사자 동의없이 열람했다.
그 뒤 기무사는 법원에서 B씨의 군사기밀 누설 혐의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새 영장을 발부받아 조사본부가 갖고 있던 압수물을 재압수했다. 이를 기초로 B씨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됐다.
법원은 조사본부가 애초 A사 사무실에서 컴퓨터 외장하드와 업무서류철을 통째로 압수한 것부터 '포괄적 압수'이기 때문에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은 원칙적으로 영장에 적힌 범죄 혐의와 관련된 부분만을 문서 출력물로 수집하거나 수사기관이 휴대한 저장매체에 해당 파일을 복제하는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기초했다.
재판부는 기무사 직원이 영장을 새로 발부받기 전 조사본부에 가서 당사자 동의없이 압수물을 열람한 것도 위법하다고 봤다. 기무사가 영장을 새로 받아서 조사본부가 갖고 있던 압수물을 재압수한 것 역시 애초의 압수가 위법한 만큼 인정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이 모두 적법하고, 설령 일부 절차적인 위반이 있어도 사소한 것인 만큼 증거 능력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위법한 절차를 통해 수집된 압수물과 이를 기초로 수집된 관련자 진술 등 2차적 증거는 모두 위법 수집 증거로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독수독과(毒樹毒果·위법수집 증거 배제)' 법칙을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안에 대해 "혐의와 무관한 자료를 전부 압수해 간 다음 이를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경우, 해당 증거는 물론 그에 기초해 수집된 2차 증거도 위법증거라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검찰이 압수수색 절차에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증거물을 포괄적으로 수집하거나, 당사자 동의 없이 압수물을 열람하는 등 위법을 저질러 혐의를 증명할 기회를 스스로 놓쳐선 안 된다는 취지다.
법원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별건으로 수집된 증거물에 대해 증거력을 인정할 수 있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 수사기관의 증거수집 절차에 혼선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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