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더 나은 미래 주려고 아메리칸드림 꿈꿨을 뿐인데…"
미-멕시코 국경서 익사한 부녀 유족들 "아메리칸드림 쫓지 말았어야"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아직 만 2살도 안 된 어린 딸은 가족들의 머리를 직접 빗겨주는 걸 좋아했다. 춤추기와 봉제인형을 좋아하는 쾌활한 아이였다.
아빠는 늘 부지런히 일하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었다. 피자 가게에서 일하던 그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팔고 주변에서 돈을 빌려 폭력과 가난에 찌든 고국 엘살바도르를 떠나려 했다.
미국-멕시코 국경 리오그란데강을 건너다 물살에 휩쓸려 숨진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23개월 딸 발레리아의 이야기다.
2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과 AP·AFP·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은 전날 비극적인 사진으로 지구촌을 슬픔에 빠뜨린 이들 부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자세히 소개했다.
유족과 이웃의 전언을 종합하면 마르티네스와 타니아 바네스 아발로스(21) 부부, 딸 발레리아는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 외곽 산마르틴에서 마르티네스의 모친 로사 라미레스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50년 이웃인 마르타 아르게타 데 안드라데는 AP에 "좋은 사람들이었다"며 발레리아에 대해 "난 그를 '작은 곱슬머리 소녀'라고 불렀다. 너무 예뻤다"라고 회상했다.
언젠가 미국에 가서 자신만의 집을 사겠다는 꿈에 남편은 피자 가게에서, 아내는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각각 일하며 저축했다고 한다.
엘살바도르는 범죄조직의 폭력이 만연한 곳으로 유명하지만, 이들 가족이 미국행(行)을 꿈꾼 것은 경제적인 이유였다고 유족들은 말했다.
아들 가족이 지난 4월 초 미국으로 향하겠다는 결심을 굳히자 라미레스는 "아들아, 가지 말아라. 아메리칸드림을 쫓지 말아라"며 말렸다. 그러면서 "정 가야 한다면 딸이라도 여기 남겨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마르티네스는 "아니요 엄마. 어떻게 내가 딸을 놔두고 떠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으세요"라며 거절했다고 라미레스는 전했다.
1천500㎞가 넘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지난 23일 미-멕시코 국경에 도착한 이들은 당초 미국 망명을 신청하려 했으나, '다리가 폐쇄됐으니 내일 오라'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리를 건너가려고 긴 줄이 늘어선 장면도 마르티네스 가족의 좌절감을 더했다.
이에 강을 헤엄쳐 건너가겠다는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이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아들과 손녀의 최후를 담은 사진을 본 라미레스는 AFP에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충격적이고 너무나 가혹한 사진"이라며 "그들은 단지 미국에 도착하고 싶을 뿐이었다. 더 나은 삶을 성취하겠다는 아메리칸드림을 갖고 있었을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손녀를 어떻게 보호했는지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서로의 품에서 죽었다"라며 "난 항상 (합법적인) 서류 없이 미국에 가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또 그럴 만한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아이의 외할머니인 마리아 에스텔라 아발로스도 WP에 "그들은 어린 딸의 더 나은 미래를 원했을 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으로 향하는 중미 출신 이민자들의 여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새삼 부각되고 있다.
AP는 불법입국을 시도하는 이민자들이 물살이 빠른 리오그란데강과 타는 듯이 뜨거운 소노란 사막이라는 이중 위험을 겪는다고 전했다. 지난해 불법입국 중 사망한 이민자는 283명에 이른다.
미국행을 준비하는 엘살바도르인들의 그룹채팅에는 "아이들을 데려가서는 안 된다. 거기 가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데 아이들은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조언이 올라오기도 했다.
또 WP는 이민자 보호보다는 그 숫자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강경 이민정책이 리오그란데의 빠른 물살과 함께 이민자들에게 '쌍둥이 재난'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꼭 안고 익사한 아빠와 딸...멕시코 국경 건너다 그만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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