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다뉴브 참사' 한 달…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입력 2019-06-28 06:01
[르포] '다뉴브 참사' 한 달…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여전히 추모장소에 헝가리 시민들 발길 끊기지 않아

다뉴브강 야경투어는 성업

사고원인 규명·책임자 처벌, 오랜 시간 걸릴듯



(부다페스트=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유럽 대륙에 들이닥친 폭염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기온은 이번 주 내내 최고 35도까지 치솟았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저녁 9시가 넘은 시각에도 체감온도는 30도를 웃돌았다.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다뉴브 강가 곳곳에 위치한 벤치와 잔디밭에 자리 잡고 더위를 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강변을 따라 헝가리 국회의사당을 지날 무렵 인근에 있는 머르기트 다리 주변에 설치된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그 유명한' 다뉴브강의 야경은 불과 한 달 전에 발생한 '다뉴브 참사'의 기억을 지운 듯했다.

이곳 머르기트 다리 밑에서 한국인 관광객 33명이 탄 유람선 허블레아니호(號)는 지난달 29일 밤 9시 5분께 스위스 국적의 대형 크루즈선인 바이킹 시긴호(號)에 추돌한 뒤 7초 만에 침몰했다.

배에 탑승했던 한국인 중 7명은 사고 당시 구조됐지만, 현재까지 24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 추모행렬 여전…"매우 슬픈 사고…책임 규명해야"

머르기트 다리 밑으로 다가가자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몇몇 헝가리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사고 이후 헝가리 국민과 한국 교민, 관광객들이 두고 간 조화와 촛불, 인형, 편지 등을 둘러보고 있었다.

한 달여가 지난 이날 밤에도 촛불 여러 개에 불이 켜져 있었다.

한 중년 부부가 다가와 사진을 찍고 벽과 가로등 등에 있는 메모와 편지를 유심히 읽어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부다페스트에서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관광차 수도를 들렀다는 헝가리인 콜러르씨 부부였다.

이곳을 찾은 이유를 묻자 콜러르씨는 "큰 사고가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다페스트에 온 김에 사고현장을 둘러보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세한 원인이야 모르겠지만 분명히 큰 배(바이킹 시긴)의 잘못으로 보인다"면서 "빨리 모든 실종자를 찾고 사고원인이 규명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고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처벌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금 뒤에는 젊은 커플 두 쌍이 다가왔다.

부다페스트에 사는 이들 젊은이들은 "인터넷으로 이미 사고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현장에 직접 와보고 싶었다"면서 "매우 매우 슬픈 사건이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선체를 인양하는 등 눈에 보이는 사고의 흔적을 치우기에는 충분했지만, 마음속 상처가 아물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었다.



머르기트 강 주변에서 둘러보니 이날도 다뉴브강의 유람선 투어는 성업 중이었다.

밤 10시가 가까운 시각에도 수십척의 유람선이 빠르게 강을 오르내렸다.

사고가 발생한 머르기트 다리 밑으로 동시에 세 대의 유람선이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작은 유람선부터, 이번 사고를 일으킨 바이킹 시긴호의 선사인 바이킹 크루즈사 소속의 큰 배들도 운항 중이었다.

비단 야경투어 때만이 아니었다.

앞서 이날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3시께 강 위에서 지켜보니 강가에 대형 관광버스 2대가 도착했다.

버스에서는 수십 명의 동양인 관광객이 우르르 내렸다. 이들은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줄을 지어 이동하더니 인근 선착장으로 들어갔고, 이들은 태운 유람선은 곧 다뉴브강을 나아갔다.

이곳은 허블레아니호를 비롯해 이른바 패키지 관광 등으로 부다페스트를 찾은 이들이 전세 낸 배를 이용, 다뉴브강을 관람하기 위한 선착장이다.

한 달 전 한국인 관광객들도 이곳에서 배를 탔다가 사고를 당했다.

현지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는 한 교민은 "허블레아니호 참사 이후 한국에서 온 패키지 여행객들은 추모의 뜻으로 현재 야경 유람선을 타지 않는다. 일단 8월까지는 유람선 관광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이 교민은 "그러나 여전히 중국 등 다른 곳에서 온 관광객들은 전세 배를 이용해 다뉴브강을 오간다"고 말했다.



◇ 실종자 수색 지속…사고원인 규명·책임자 처벌은 요원

사고 수습 과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다페스트에 파견된 정부합동신속대응팀은 27일 최근 수습한 시신이 60대 한국인 여성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2일 선박 침몰 사고 현장으로부터 약 30Km 떨어진 체펠섬(Csepe)에서 여성 시신이 발견돼 신원확인 작업이 진행돼왔다.

이에 따라 이번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24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 한국인 중 2명은 실종상태다.

한국 정부합동신속대응팀과 헝가리 당국이 여전히 수색 작업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그동안 항공과 수상 수색에 집중하던 한국과 헝가리 수색팀은 최근 맑은 날씨가 지속돼 수위가 내려가자 인근 강둑에서 육상수생을 병행하고 있다.

불어났던 강물에 떠내려온 나뭇가지 토막, 무성하게 자란 풀들로 인해 걸음을 옮기기조차 쉽지 않은 데다, 폭염으로 인해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수색팀은 묵묵히 맡은 일을 다 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 10여명도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부다페스트에 남아 있다. 이들의 곁에는 안산시 건강가정지원센터 등에서 파견된 가족심리상담 전문가들이 함께 하면서 가족들이 정신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돕고 있다.

헝가리에서 65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선박사고가 된 이번 '다뉴브 참사'를 바라보는 교민들의 표정 역시 밝지 않다.

많은 한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이번 사고는 교민사회에도 충격과 슬픔을 가져왔다. 부다페스트에는 1천명 안팎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

교민 중 많은 이들이 여행 가이드, 식당 등으로 한국인 관광객들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사고가 그저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만큼 교민사회가 받은 충격도 컸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침몰사고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허블레아니호를 뒤에서 들이받은 가해선박인 바이킹 시긴호는 사건발생 후 몇 시간의 조사를 거쳐 방면됐고, 이후 여전히 국경을 넘나들며 정상운항을 계속하고 있다.

바이킹 시긴호 선장 유리 C 역시 법원에 낸 보석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헝가리 경찰은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사고조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책임자 처벌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25일 삐테르 폴트 헝가리 검찰총장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실종자 수색에 대한 지속적인 협조와 함께 철저한 사고원인 규명, 책임자 처벌을 당부했다.

앞서 사고 발생 며칠 후인 지난 4일에도 폴트 총장에게 서한을 보낸 것을 고려하면 두 번째다.

왜 이같은 사고가 벌어졌는지, 누가 책임이 있는지를 밝히지 못하면 사고 수습이 완료될 수 없는 만큼 이를 헝가리 당국에 재차 강조하기 위한 취지로 보인다.

당분간 참사 피해자와 가족에게도, 그리고 우리 국민에게도 '다뉴브 참사'는 쉽게 아물지 않는, 아물지 못하는 상처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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