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팔레스타인에 '장밋빛 경제' 유혹…팔 "나라 안판다"

입력 2019-06-26 20:22
美, 팔레스타인에 '장밋빛 경제' 유혹…팔 "나라 안판다"

팔레스타인 경제계획안 성공 난망…정치적 해법이 중요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팔레스타인의 경제 개선을 위한 청사진을 발표함에 따라 중동 정세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미국 정부는 25일(현지시간) 바레인 마나마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등 아랍국가들이 참석한 '중동평화 워크숍'을 열고 팔레스타인 경제개발 계획을 논의했다.

이 계획은 '평화에서 번영으로'(peace to prosperity)로 명명됐으며 향후 10년간 팔레스타인 경제 발전을 위해 500억 달러(약 58조1천750억원)를 투자하는 게 골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워크숍에서 팔레스타인에 이런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서 미국의 평화안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돈을 받고 나라를 팔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어 미국의 바람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잘살 수 있다' 팔레스타인에 손짓…일자리·전기공급 늘리고 대학 건설

미 백악관이 공개한 팔레스타인 경제개발 계획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거창한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국내총생산(GDP)을 2배 규모로 확대하는 한편, 100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한 자릿수의 실업률, 빈곤율 50% 감소 등의 목표가 제시됐다.

또 한국,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기업 친화적 국가들이 투자 주도의 성장, 굳건한 사회기반시설 개발, 강력한 수출을 앞세워 번영했다며 팔레스타인이 경제 발전에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보면 우선 9억 달러를 투입해 도로, 철도 등 교통망과 통행로를 확충한다.

지리적으로 분리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잇는 도로, 철로를 건설하고 국경에서 물자와 사람이 오가는 통행로를 늘리는 방안이다.

미국은 교통망 개선 등으로 팔레스타인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현 17%에서 40%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팔레스타인 주민의 고질적인 문제인 전기, 식수 부족에 대한 해결책도 나왔다.

가자지구의 발전소를 업그레드 함으로써 주민이 하루에 16시간 이상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가자지구 주민은 하루에 4시간 정도밖에 전기를 쓰지 못하고 있다.

'평화에서 번영으로'는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식수를 2배로 늘리고 4세대(4G) LTE 등 최신 통신 서비스를 구축하는 구상도 담았다.

관광산업의 경우 호텔 등 숙박시설을 개선함으로써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에서 교육, 직업, 여성, 보건 등의 분야도 개선하겠다고 장담했다.

세계에서 150위권 안에 드는 팔레스타인 대학을 1개 이상 만드는 한편, 팔레스타인 학생들이 외국에서 학위를 따는 것도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20%에서 35%로 높이고 학생들의 직업훈련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보건 분야에서는 유아 사망률을 1천명당 18명에서 9명으로 떨어뜨리고 팔레스타인 주민의 평균 기대수명을 74세에서 80세로 늘리는 목표가 제시됐다.

아울러 미국은 팔레스타인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공공서비스 개선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 팔레스타인 "정치가 우선"…예루살렘 분쟁 해결이 핵심

미국 정부의 팔레스타인 개발 계획은 현재로선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팔레스타인 자금 지원 계획을 '세기의 기회'라고 부르며 팔레스타인의 호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날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곳곳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는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미국을 규탄했다.

최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도 "경제 상황이 정치적인 것보다 먼저 논의돼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경제 지원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미국의 이번 발표를 굴욕적으로 느꼈을 공산이 크다.

미국의 친(親)이스라엘 중동평화안을 수용해야만 경제개발을 돕겠다는 일종의 '미끼'로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2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권의 반발을 샀다.

여기에 미국은 작년부터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등 국제기구를 통한 팔레스타인 지원금을 대폭 줄임으로써 팔레스타인 경제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미국이 갑자기 내놓은 경제 지원 계획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아직 공개하지 않은 팔레스타인 평화안도 이스라엘에 편향된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이 '2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국을 세우는 평화안)에서 한발 물러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내용을 포함한 평화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국 건설을 바라는 만큼 예루살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미국의 경제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풀이된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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