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북상] ④산허리 '뚝'…위험천만 태양광 발전시설(끝)

입력 2019-06-27 07:01
수정 2019-06-27 08:39
[장마북상] ④산허리 '뚝'…위험천만 태양광 발전시설(끝)

지난해 300㎜ 폭우에 남원시 보절면 주택·농경지 흙탕물 범벅

"또 피해 날라" 농사도 못 지어…당국 "방재시설 갖췄다" 느긋



(남원=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큰비만 오면 불안하죠. 언제 저기가 또 무너질 줄 어떻게 알아요?"

장마전선이 북상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 26일 오후.

전북 남원시 보절면 사촌마을에서 만난 박종구(49)씨는 손으로 마을 뒤편 산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산허리를 깎아 만든 태양광 발전시설.

작년 이맘때쯤 애써 모내기한 마을 논밭을 흙탕물로 만든 주범으로 꼽히는 곳이다.

당시 보절면 일대에는 나흘 동안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태양광 발전시설 주변 토사가 무너져 내렸다.

농수로를 따라 토사가 유출돼 주변 논밭 5.3㏊가 흙탕물에 잠기는 피해를 봤다.

주택 4동이 부분 침수·매몰됐고, 쏟아진 흙더미에 건물의 석축 일부가 금이 가는 등 50여 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에 유례없는 피해가 발생했다.

마을에서 20년 넘게 농사를 지은 박씨의 논도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흙에 진흙탕으로 변했다.

파릇파릇한 모는 시간당 40㎜가 넘는 강우와 흙탕물에 속절없이 쓰러졌고, 굴러온 돌무더기와 잡목은 논밭을 뒤덮었다.

모내기를 마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때였다.



워낙 빠른 속도로 흙더미가 쏟아져 손 쓸 겨를도 없었다며 박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산에서 쏟아진 흙으로 배수로가 막히고 애써 심은 모도 다 죽어버렸다"며 "저기에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다고 나무를 다 뽑고 산을 파헤쳐서 농사지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불안해서 아예 침수된 논에 모를 심지도 않았다"고 털어놨다.

마을에서 만난 다른 주민도 박씨와 같은 말을 했다.

유모(81)씨는 "예전에는 웬만큼 내린 비로 인해 산이 무너지거나 논이 잠기는 일은 거의 없었다"며 "저게(태양광 발전시설) 들어온다고 산을 깎으니까 흙이 훤하게 드러나서 비가 작년처럼 많이 오면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주민은 작년 집중호우 때 흙탕물에 잠긴 논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모가 자랐을 논은 산에서 떠밀려 온 토사로 논인지, 펄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지대가 높은 곳은 아예 고인 물이 흘러내려 강처럼 보였다.

고지에서 흐른 물이 빠져나가야 할 배수구는 산에서 떠밀려 온 돌덩이들에 막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되레 배수로를 타고 내려온 빗물이 역류해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수백m 떨어진 산 아래 논까지 침수됐다고 주민들은 증언했다.



마을에서 100m 정도 떨어진 태양광 발전시설로 향하는 진입로에 들어서자 주민들의 하소연이 이해됐다.

차로 오르기 버거울 정도로 가파른 산비탈 위에 지어진 발전시설 주변에서는 잘려나간 나무와 붉게 속살을 드러낸 흙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직 터 닦기 작업이 진행 중인 부지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붉은 황토가 공기 중으로 흩날렸다.

진입로도 엄지손톱만 한 돌무더기를 깔아놓은 수준이라 집중호우로 인한 유실 우려가 컸다.

발전시설 주변에는 철제 펜스와 콘크리트로 만든 배수로가 설치돼 있었지만, 요즘같은 국지성 물폭탄을 버텨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었다.

주민들이 풍수해 원인으로 지목하는 산허리의 태양광 발전소는 2만8천여㎡ 면적에 997㎾급 전력생산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지난해 4월 전북도와 남원시의 허가를 받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벌목은 이미 마친 상태이고, 일부 부지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 이뤄지고 있다.

훤하게 드러난 산허리를 보면서 불안감을 호소하는 주민과 달리, 남원시는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느긋한 반응을 보였다.

시 관계자는 "작년 집중호우로 논에 토사가 유출되고 나서 배수로를 추가 설치하고 저류지를 보완하는 등 방재시설을 추가로 갖췄다"며 "붕괴나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큰 곳에는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ja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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