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랜드 참사 20년] 숙박형 체험학습 사라졌지만…잠재된 안전사고(하)
유형만 달라졌을 뿐…'통학버스 방치' 등 어린이 안전사고 되풀이 발생
'세림이법'에도 습관적 안전불감증 여전…"현실 반영 못하는 안전대책"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권준우 기자 = 20년 전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등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씨랜드 참사' 이후로 우리 사회는 어린이 안전과 보호를 위해 얼마나 성숙했을까.
체험학습 매뉴얼 강화, 통학 차량 안전을 강화한 '세림이법' 등장, 안전교육 의무화 등 정부 부처와 교육 현장엔 제도 및 법률적 시스템이 자리 잡혔지만, 여전히 잊을 만하면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대책들이 결국 안전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현장에 혼란만 가중한다고 입을 모았다.
◇ 유치원 체험학습 숙박형→1일형…유아 26명당 인솔교사 1명뿐
숙박형 체험학습 또는 수련 활동에서 사망사고가 되풀이되자 정부는 2013년 수련 활동 전반에 대한 점검에 나서는 동시에 전국 유치원에 숙박형, 장거리 체험 활동 자제를 주문했다.
나이 어린 만 3∼5세 아동들이 단체로 숙박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린 것이다.
2013년은 충남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고교생 5명이 바다에 빠져 숨진 사고가 있던 해다.
이때부터 대부분 유치원은 안전을 이유로 숙박형이 아닌 '당일치기' 1일형 체험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체험학습 안전매뉴얼은 한층 강화됐지만, 현장에선 이를 따라가기 벅찬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학생 안전과 가장 밀접한 인솔자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게 큰 어려움이다.
경기도교육청의 체험학습 안전매뉴얼에 따르면 유치원의 경우 학급당 2명 또는 유아 26명(만 5세 기준) 기준 2명 이상의 인솔자를 확보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나, 보조 인력을 한시적으로 고용해야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모든 유치원이 매번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듯 매뉴얼에도 '운영위 심의·자문을 거쳐 학급당 인솔교사 1명 이상 인솔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을 달아두었다.
이렇다 보니 원아 26명을 담임교사 1명이 홀로 책임져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경기도교육청 유아교육과 관계자는 "공립유치원은 보조교사도 없어 체험학습을 도와줄 보조 인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학급별로 체험학습을 가는 경우가 많아 그때마다 원장, 원감이 동행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응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담임교사 1명이 이에 대응하고 나머지 아이들을 관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 사고유형만 달라졌을 뿐…'세림이법'에도 여전한 안전불감증
2016년 여름 광주광역시에선 운행을 마친 유치원 통학버스에 4세 어린이가 8시간 방치돼 의식 불명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듬해엔 대구 남구 한 사립유치원 통학버스에 3세 원아가 방치됐다가 1시간여 만에 발견됐다. 작년에도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유치원 통학버스에 6살 원아가 방치됐다가 뒤늦게 발견되는 등 '통학버스 방치 사고'가 이어졌고 정부는 부랴부랴 통학버스 하차 확인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정부는 이보다 앞선 2015년 13세 미만 어린이 통학 차량에 동승자 탑승 등을 의무화한 일명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을 마련했으나, 이 법률 사각지대에 놓인 통학 차량은 보호 동승자 없이 운행하고 있다.
지난달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서 초등학생 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설 축구클럽 통학용 승합차 사고 역시 세림이법 적용 대상에서 벗어난 통학용 차량이었으며, 사고 당시 보호자가 탑승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씨랜드 참사'처럼 단체로 이동하는 체험학습에서의 안전사고는 줄었을지 몰라도 새로운 유형의 안전사고가 꼬리를 물듯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통계수치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육진흥원이 작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에게 낸 '최근 5년간 어린이집 안전사고 및 평가인증 현황' 자료를 보면 안전사고로 부상 또는 사망한 아동은 2013년 4천209명, 2014년 5천827명, 2015년 6천797명, 2016년 8천539명, 2017년 8천467명 등이다.
이 기간 사망한 아동만 46명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전국 스쿨존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만 435건이며, 이 가운데 3명이 숨지고 149명이 중상을 입었다.
◇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에 혼란만 가중…법률 사각지대 줄여야
전문가들은 현실에 적용 가능한지 등 사전에 충분한 검토 없는 대책들은 오히려 현장에 혼란만 가중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교육청 유아교육과 정재영 장학사는 "최근 강화된 안전수칙에 따라 유치원 원아들이 전세버스를 이용할 경우 KC 인증을 받은 유아보호용 장구(카시트 등)를 설치하고 안전띠를 착용해야 하는데 KC 인증 제품 중 몸무게 18㎏이 넘는 아동을 위한 제품은 없다"라며 "이런 문제 때문에 일부 유치원이 예정했던 체험학습을 가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 장학사는 "체험학습 인솔 인력 확보하는 문제도 그렇고 안전띠도 그렇고 현장은 제도를 따라가기 벅차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법률 사각지대에 놓인 안전 문제를 세심히 살펴볼 필요도 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씨랜드 참사 이후 법과 제도 등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기존 건축물에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사고 위험성이 높은 건물은 아직도 많다"며 "새 제도를 기존 건축물에도 적용하는 강력한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참사는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엇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안전 의식 강화가 중요하다.
양미경 어린이안전학교 강사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횡단보도 건널 때 손들던 학생이 4학년만 되도 부끄럽다며 하지 않는다. 어른들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라며 "안전 의식은 매일매일 밥 먹듯이 알려주고 강조해야 응급 상황 시 대처가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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