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노정관계 파국 치닫나
민주노총 강력 반발…총파업 등 총력투쟁 준비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 21일 구속됨에 따라 정부와 민주노총의 노정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됐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포함한 강경 투쟁에 나설 방침이다. 사회적 대화 분위기도 급격히 얼어붙을 전망이다.
◇ 민주노총 "文정부는 노동탄압 정부"…전면 투쟁 착수
서울남부지법은 이날 김 위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도망 염려'를 이유로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민주노총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더 이상 촛불 정부가 아닌, 노동탄압 정부를 상대로 한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구속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이 집권 초기의 '밀월'이 끝나고 완전히 돌아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김 위원장의 구속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고강도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20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김 위원장의 구속 시도를 '노정관계 파탄 선언'으로 규정하고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은 다음 달 3일 예정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 외에도 다음 달 '공안 탄압 규탄' 구호를 전면에 내걸고 전국적인 동시다발 총파업에 나선다. 내년도 최저임금의 본격적인 심의 기간인 이달 말∼다음 달 초에도 총력투쟁을 한다.
김 위원장의 구속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우려된다.
민주노총은 국가적 차원의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는 불참하지만, 부문별로 설치된 다양한 대화 기구에는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정부 주요 위원회만 해도 작년 11월 기준으로 일자리위원회를 비롯해 53곳에 달한다.
민주노총이 김 위원장의 구속에 반발해 이들 기구에서 진행 중인 대화에 불참할 경우 노동계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통로가 하나 없어져 대화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들 기구를 통해 추진하는 각종 정책에 대해 노동계의 자발적인 수용을 끌어내기도 어려워진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도 불씨는 남아 있었으나 김 위원장의 구속으로 이마저도 꺼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文정부, 2년 만에 민주노총과 밀월→전면 갈등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하며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친(親) 노동 성향을 보인 문재인 정부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사태라는 게 노동계 안팎의 시각이다.
민주노총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노정관계는 집권 초기만 해도 '밀월'이라고 할 만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계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작년 1월에는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면담했고 민주노총은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복귀해 사회적 대화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정부의 노동존중사회 정책이 경영계와 보수진영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정부는 '우클릭' 행보를 하기 시작했다. 고용과 경제 지표 악화가 노동존중사회 정책 탓이라는 보수진영의 공세 속에 우클릭 행보는 강해졌다.
민주노총은 작년 6월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떨어뜨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계기로 정부와 갈등 국면에 들어섰다.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의 현장 안착을 위한 대책으로 추진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강하게 반대했다.
대화파로 분류되는 김명환 위원장은 경사노위 참여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민주노총 내부에서 반정부 기류가 강해지면서 번번이 무산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민주노총은 갈수록 문재인 정부에 '우군'보다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 것으로 보인다.
보수진영은 민주노총의 폭력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한편,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에 휘둘린다고 비판했다. 양극화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오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도 민주노총의 '촛불 청구서'에 따른 것으로 치부됐다.
보수진영의 여론 공세에 밀린 정부 여당에서는 민주노총과 거리를 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항상 폭력적인 방식을 쓴다"(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전 원내대표), "어떤 집단이라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최근 민주노총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경찰이 김명환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중도·보수세력을 의식해 민주노총과 거리를 두려는 정부의 고려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노무현 정부 전철 밟나…'민주노총 비타협도 문제' 지적도
노동계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비타협적인 태도로 고립을 자초한 면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우클릭 행보는 보수진영의 여론 공세에 밀린 결과일 수 있지만, 일부 정책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전면적인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참여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원색적으로 비판해 양대 노총의 갈등 양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여러 차례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노총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이 전면적인 갈등으로 치닫는 현재 상황은 노무현 정부 시절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초기에는 우호적이었지만,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비정규직보호법 처리 등을 놓고 정면충돌하며 지지 기반에서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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