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 전남편 시신 못 찾아 '시신 없는 살인사건' 되면

입력 2019-06-20 10:01
수정 2019-06-20 10:21
고유정 전남편 시신 못 찾아 '시신 없는 살인사건' 되면

경감·가중 요인 따라 집행유예∼무기징역, 수사 결과 따라 형량 갈릴듯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제주 전남편 살해 사건'의 피의자 고유정(36)이 죗값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전남편 강씨(36)의 시신이 사건발생 한 달 가까이 되도록 발견되지 않으면서 고씨의 살인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찰은 지난 5일 인천 서구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강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라면박스 2개 분량의 뼈 추정 물체를 발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지만, 동물 뼈라는 결론이 나왔다.

18일에도 경기도 김포시 소각장에서 뼛조각 40여 점을 발견, 현재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500∼600도로 고열 처리된 후 1∼2㎝ 이하로 조각난 상태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것임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고유정 전남편 추정 유해 발견...14일간 행적 드러나 / 연합뉴스 (Yonhapnews)

경찰은 고씨가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해 해상에 유기한 정황을 포착, 해상에서도 수색을 벌이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자칫 이 사건이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전에도 여러 차례 시신을 찾지 못한 살인사건이 발생했지만, 범행동기와 계획범행임이 명백할 경우 법원은 범인에게 어김없이 철퇴를 내렸다.

4년전 경기도 화성시에서 발생한 일명 '육절기 살인사건'은 당시 큰 화제를 모았던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었다.

'육절기 살인사건'은 2015년 2월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서 세입자인 범인이 집주인 여성을 살해한뒤 육절기를 이용해 시신을 훼손, 인근 개울가에 유기한 사건이다.

범인은 구애를 거절한 집주인 여성의 금품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경찰은 당시 '모르쇠'로 일관하던 범인의 행적을 좇던 끝에 시신을 훼손한 육절기(정육점에서 소나 돼지의 뼈를 자를 때 쓰는 도구)와 톱날에서 피해자의 인체조직을 발견했다.

또 범인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인체 해부와 관련한 문서와 동영상을 내려받아 컴퓨터 폴더에 따로 보관했고, 피해자 실종 4일 전에 중고 육절기를 구매한 사실도 확인하면서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했다.

범행동기 역시 명백했다.

범인과 피해자가 원만한 이웃 관계로 지내다 남성의 구애를 여성이 거절하면서 사이가 틀어졌고, 결국 범행으로 이어졌음을 경찰이 밝혀냈다.



1심 재판부는 과학수사를 통한 간접증거와 뚜렷한 범행동기를 볼 때 "합리적 의심 없이 살인혐의가 입증되고, 피고인의 범행 수법이 매우 잔인해 피해자의 인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찾아볼 수 없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10년 부산에서 발생한 '시신 없는 살인사건'은 명확한 타살 증거가 없고 살인과 관련한 정황증거만 있는 상황에서 범인의 유죄가 입증된 사례다.

이 사건은 20대 여성의 시신을 화장한 뒤 마치 자신이 숨진 것처럼 속여 거액의 보험금을 받아 챙기려 한 엽기적 사건이었다.

당시 범인 A(당시 40·여)씨는 2010년 5월 24억원 상당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6월 중순 대구의 모 여성쉼터에서 소개받은 B(당시 26·여)씨를 부산으로 데려온 다음 날 새벽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화장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숨진 것처럼 서류를 꾸며 보험금을 타내려다 범행이 드러났다.

당시 A씨는 경찰과 검찰수사에서는 물론 법정에서도 사체은닉과 사기, 위조사문서행사 등 대부분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살인혐의만은 완강히 부인했다.



시신이 없었기 때문에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대법원 재판부는 A씨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개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피해자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아 살해 동기가 충분하고, 인터넷을 통해 독극물과 살인방법 등을 검색한 점 등을 계획범행 증거로 인정해 A씨에 대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이번 전남편 살해사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검찰은 고유정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피해자의 DNA가 발견된 흉기 등 증거물이 총 89점에 달하고, 고유정 역시 일단 살인혐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씨가 전 남편과 자녀의 첫 면접교섭일이 지정된 다음 날부터 보름간 범행을 계획한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11일 열린 최종 수사브리핑에서 고씨가 제주에 오기 전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를 처방받아 구입하고 제주에 온 뒤 마트에서 범행도구를 구입한 점, 범행 전 범행 관련 단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차량을 제주까지 가져와 시신을 싣고 돌아간 점 등을 계획적 범죄의 근거로 설명했다.



반면, 고유정은 "전남편인 강씨가 성폭행하려고 해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살해하게 된 것"이라며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하고 있다.

고씨 측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범행과정에서 다친 것으로 보이는 오른손에 대해 법원에 증거보전신청을 했다.

전남편이 성폭행하려 하자 대항하는 과정에서 고씨의 오른손이 다쳤다는 것을 재판과정에서 입증하기 위한 취지로 해석된다.

앞으로 검찰이 보강수사를 통해 고씨의 범행동기와 계획범행 등에 대해 얼마나 충실히 입증해내느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극명히 나뉠 것으로 보인다.

살인범죄에 대한 법원의 양형기준은 범행동기에 따라 ▲참작동기 살인 4∼6년 ▲보통동기 살인 10∼16년 ▲비난동기 살인 15∼20년 ▲중대범죄 결합 살인 20년 이상 또는 무기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 23년 이상 또는 무기 등으로 나뉜다.

이번 사건의 경우 검찰과 고유정 측은 피해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참작동기 살인인지 또는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인지 여부를 놓고 재판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고유정의 경우 계획적 살인, 사체 손괴, 잔혹한 범행수법, 반성 없음, 사체 유기 등이 모두 인정될 경우 형량이 더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전남편의 성폭행 시도로 인한 우발적 살인이라는 고유정의 주장이 참작할 만한 이유로 인용될 경우 형량이 최저 3년까지 내려가 집행유예도 가능하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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