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증 실패한 성락원 과제는 정확한 연원 찾기

입력 2019-06-18 16:25
역사고증 실패한 성락원 과제는 정확한 연원 찾기

'이조판서 심상응'은 허구 확실…"관련 사료 면밀히 분석해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비밀의 정원'으로 알려진 명승 제35호 성락원(城樂園)이 지난 4월 일반에 개방되면서 때아닌 역사 논란에 휘말렸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실린 성락원 설명 첫 문구인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로 철종(재위 1849∼1863) 때 이조판서 심상응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나타나지 않는다. 심상응은 1950년 성락원을 사들인 고(故) 심상준 제남기업 선조로 알려졌는데, 언제부터 '이조판서 심상응'이 문화재 설명에 등장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문화재청은 논란이 불거지자 조선 철종 때 심상응 존재 여부에 대해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하겠다고 밝혔으나,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 후기 역사 기록에 나오는 심상응은 1898년 임명된 '경기관찰부 주사' 외에는 없다고 하면서 심상응 논란은 일단락됐다.

18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성락원은 명승 이전에 1992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78호에 지정될 당시 이조판서 심상응 별장이자 의친왕 이강 별궁이라는 점과 서울에 남은 유일한 조선시대 민가조원(民家造園)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선시대 고위직을 지낸 사대부가 소유했다는 역사적 가치와 오래된 민간 정원이라는 조경학적 가치를 고려하면 사적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문화재위원회 판단이었다. 이러한 판단은 성락원이 2008년 사적에서 명승으로 바뀔 때도 그대로 적용됐다.

하지만 명승은 단순히 경치가 멋진 장소가 아니라 인문학적으로도 의미도 있는 곳이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과거 성락원과 함께 국내 3대 정원으로 꼽은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 부용동은 각각 기묘사화 이후 낙향한 양산보(1503∼1557), 조선 중기 문신인 윤선도(1587∼1671)가 조성했다.

성락원이 지닌 인문학적 가치는 '이조판서 심상응'으로부터 비롯했는데, 심상응이 사실상 가상 인물로 판명되면서 한편에서는 성락원을 조선시대 정원으로 볼 수 없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을 의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성락원을 문화재로 지정할 때 근거가 된 '조선시대 민간조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학계 관계자는 "성락원이 현대에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장빙가'(藏氷家) 같은 글씨를 감안하면 18∼19세기 정원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다"며 "성락원은 본래 계곡물이 흐르던 곳이어서 누군가가 정원으로 만들어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성락원이라는 문화재 명칭은 후대에 붙였고, 역사성도 없다"며 "정확한 연원이 밝혀지면 문화재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김세호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박사는 조경 전문 매체인 '환경과 조경'에 지난 12일 기고한 글에서 성락원을 지칭한 것으로 추정되는 19세기 후반 기록을 찾았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기고문에서 1887∼1888년에 정선군수를 지낸 오횡묵(1834∼?)이 '강원도정선군총쇄록'에 남긴 글을 인용했다.

쇄록에 따르면 오횡묵은 "나는 듯한 하나의 정자가 걸음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니 바로 황춘파(黃春坡: 황윤명) 선생의 별서(別墅·교외에 따로 지은 집)"라며 "제도가 작고 경계가 그윽하며 폭포수가 떨어지고 향기로운 화훼가 형형색색이라 사람을 기쁘게 할 만했다"고 했다.

오횡묵은 1894년 10월 20일 '경상도고성부총쇄록'에도 "나는 혜화문에서 황춘파의 계정(溪亭)으로 들어갔다"며 "안부를 묻는 동안 몇 시간이 지났기에 억지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별장을 나섰다"고 적었다.

두 글에 나오는 황춘파는 19세기 문인 황윤명(1844∼?)으로, 그의 문집인 '춘파유고'(春坡遺稿)에 수록된 시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가 성락원 바위에 새겨져 있다.

김 박사는 "19세기 한말 사대가 중 한 명으로 1884년에 세상을 떠난 강위가 황춘파 시옥(詩屋)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고 하는데, 그가 말한 황춘파 시옥이 성락원과 동일한 장소인지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성락원 관련 자료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정비계획 용역 결과와 성락원에 얽힌 사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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