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최대압박 대이란 제재도 '이긴' 이라크 50도 여름 더위

입력 2019-06-17 16:47
美 최대압박 대이란 제재도 '이긴' 이라크 50도 여름 더위

미, 이란서 에너지 수입할 수 있도록 이라크에 제재 면제 또 연장

'전력난' 이라크, 발전량 4분의 1 이란에 의존

해마다 여름철 전력난·민생고 항의 '불쾌지수' 반정부 시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이 이란을 '최대압박'하겠다면서 경제·금융 제재를 가하는 가운데 이라크만 유일하게 제재 면제가 연장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이라크가 이란에서 계속 에너지를 수입할 수 있도록 제재를 120일간 면제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5일 이란과 에너지를 거래하는 행위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복원했으나 이라크에만은 45일간의 면제를 승인했다.

이후에도 지난해 12월과 3월 90일 기한의 제재 면제를 두 차례 연장했고, 이 면제 연장이 이번 주 끝나게 되자 또 한 번 제재에서 예외를 둔 것이다. 면제 기간도 가장 길다.

미국이 사실상 유일하게 이라크를 제재에서 예외를 두는 것은 심각한 전력난 탓이다.

이라크는 2003년 미국의 침공과 이후 15년간 계속된 내전으로 발전·송전 시설이 크게 손실을 봤다. 이라크 정부의 고질적인 부패로 사회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이라크의 전력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인접한 자원 부국 이란에서 전력과 발전용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해야만 간신히 전력난에 대비할 수 있다.

이라크 전력부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필요한 전략량이 2만4천㎿지만 공급량은 이란에서 수입하는 LNG를 쓰는 발전량과 전력을 합해도 1만8천㎿에 그친다.

이라크는 이란에서 하루에 LNG 2천800만㎥(전력 2천800㎿ 발전 상당)와 1천800㎿의 전력을 송전선을 통해 수입한다. 전체 전력의 4분의 1을 이란에 의존하는 셈이다.

이라크는 지난달 초 미국이 한국, 중국, 일본 등을 대상으로 한 원유 수입 제재 예외를 중단하자 촉각을 곤두세웠다.

공교롭게 제재가 끝나는 6월 하순부터 전력이 부족한 이라크 남부는 이미 여름철이 시작돼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이라크 남부는 물론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섭씨 50도까지 기온이 치솟는 여름철만 되면 전력 부족으로 냉방 시설을 충분히 가동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항의 시위를 매년 벌였다.

지난해에는 이 시위가 정부의 무능과 만성 부패, 민생고를 비판하는 반정부 시위로 확산해 일부 유전 시설이 점거되기도 했다.

시위 규모가 크고 광범위해 이라크 정부는 이른바 여름철 '불쾌지수 시위'에 매우 민감하게 대응한다. 지난해에도 이라크 총리가 시위 현장을 직접 찾아 시위대를 다독이고 추경 예산 집행을 약속해 겨우 진정됐다.

전력부는 전력 사용량이 증가하는 여름철에는 미국의 바람대로 이란에서 에너지 수입을 줄이기는커녕 LNG 700만㎥, 전력 700㎿를 더 수입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미국도 중동의 전략적 요충인 이라크 정부의 안정에 공을 들인다.

이라크가 이란에 기울게 되면 미국은 유사시 이란을 군사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상군 주둔 기지를 잃게 되고 정치적으로도 중동의 절반을 이란에 넘겨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산유량이 두 번째로 많은 이라크가 미국의 통제 밖으로 벗어나게 되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진영의 유가 통제력은 크게 타격받는다.

게다가 전력난이 심각한 바그다드와 남부는 그렇지 않아도 이슬람 시아파가 주로 거주해 종파적으로 이란과 가깝고 경제 교류도 활발하다.

불볕더위로 이라크 남부의 전력난이 심각해지면 미국의 제재로 책임을 돌리는 반미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이는 곧 이라크 정부에 대한 불신과 안보 불안, 이란의 개입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미국은 제재를 연장하면서도 이라크가 에너지를 고리로 이란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도 달갑지 않은 모호한 처지다.

미 국무부는 이번 제재 면제와 관련해 "이라크의 에너지 부족을 완화하려는 것"이라며 "동맹인 이라크와 대이란 제재를 계속 논의하겠다"라고 설명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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