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16일 '송환법' 저지 100만 시위…친중파도 "법안 연기하자"(종합)
"경찰 강경진압 등으로 여론 악화해 송환법 처리 7월로 미룰 가능성"
홍콩 입법회, 7월 초까지 처리 못 하면 가을 회기로 넘길 수도
행정회의 의장·캐리 람 측근 등 친중파 "여론 고려 법안 연기해야"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지난 9일 홍콩 시민 100만 명이 참여한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 반대 시위에 이어 16일에도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저지 시위가 열릴 것이라고 홍콩 범민주 진영이 밝혔다.
지난 12일 시위 때 경찰의 강경 진압 등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면서 친중파 진영에서도 법안 처리를 연기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모습이다.
1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지난 9일 시위를 주도한 홍콩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일요일인 오는 16일 홍콩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간인권전선은 16일 시위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철회, 12일 입법회 인근 시위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 사과,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의 사퇴 등을 촉구할 계획이다.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은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는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한다. 지난 9일에는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의 홍콩 시민이 역대 최대 규모의 반대 시위를 벌였다.
'검은 대행진'으로 이름 붙여진 16일 시위에서는 홍콩 시민들이 오후 2시 30분 검은 옷을 입고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 정부청사까지 약 4㎞를 행진할 계획이다.
물대포·고무탄 동원된 홍콩 시위…경찰 '폭동' 규정 / 연합뉴스 (Yonhapnews)
지난 9일 시위 때는 불빛을 밝히자는 뜻으로 흰 옷을 입었다면, 이번에는 12일 시위 때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는 의미로 검은 옷을 입자는 얘기다.
민간인권전선 측은 "지난 9일 시위에 나온 100만 명의 시민이 다시 나올 것이며, 당시 나오지 않은 시민들도 12일 시위 때 경찰의 과잉 진압에 분노해 16일 시위에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12일 수만 명의 홍콩 시민이 입법회 건물 주변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저지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최루탄, 고무탄, 물대포 등을 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나아가 민간인권전선은 홍콩 의회인 입법회가 오는 17일 범죄인 인도 법안 2차 심의를 할 것을 우려해 입법회 주변에서 시위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간인권전선 측은 "동맹휴학, 휴업, 총파업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17일 모든 홍콩인이 시위에 나서 법안 심의를 저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한 홍콩 시민의 분노 표출에 놀란 친중파 의원들이 법안 심의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7월로 법안 심의를 미룰 가능성도 있다고 SCMP가 여러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당초 앤드루 렁 입법회 의장은 12일 범죄인 인도 법안 2차 심의에 이어 61시간의 토론 시간을 갖고 오는 20일 3차 심의와 표결에 들어간다는 일정을 제시했다.
그러나 12일 홍콩 시민 수만 명이 입법회 건물을 둘러싸고 저지 시위를 벌이자 2차 심의를 연기했다.
한 입법회 관계자는 "우리가 법안을 강행해 20일까지 표결을 마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7월 1일 이후로 법안 심의가 미뤄져도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에서는 1997년 이후 매년 주권반환일인 7월 1일 많게는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지기 때문에, 홍콩 정부는 당초 7월 1일 이전에 범죄인 인도 처리를 마치려고 서둘렀었다.
입법회는 7월 중순 여름 휴회에 들어가기 때문에 7월 초순까지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가을 회기 때 법안이 다시 제출돼야 한다.
일부 친중파 의원은 입법회 건물 밖에서 심의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이는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는 편법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
홍콩 시민의 대규모 저지 시위로 범죄인 인도 법안 처리가 지연되자 중국 중앙정부도 당황하고 있으며, 특히 대만 대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중앙정부의 홍콩·마카오 연락사무소 관계자는 "범죄인 인도 법안은 중앙정부가 아닌 캐리 람 행정장관이 주도한 것"이라며 "대만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데, 마치 이 법안이 (독립 성향인) 민진당에 '탄약'을 제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날 2020년 대선 후보 결정을 위한 대만 민진당의 당내 여론조사 경선에서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이 민진당의 대선 후보로 사실상 결정됐다. 차이 총통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대중국 강경파이다.
홍콩 입법회의 친중파 의원들은 범죄인 인도 법안에 찬성하는 서명이 92만 명을 넘었다면서 법안 처리의 당위성을 강조하지만, 조속하게 법안을 처리하려던 당초의 열정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SCMP는 전했다.
악화한 여론을 의식한 듯 친중파 진영에서도 법안 처리를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캐리 람 행정장관 자문기구인 행정회의 버나드 찬(陳智思) 의장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러한 상황에서 법안을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매우 어려우며, 우리는 적대감을 최소화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친중파인 찬 의장은 당초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을 주장했으나, 최근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찬 의장은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수십만 명의 홍콩 시민이 참여하는 시위가 발생해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이 발생하는 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한 기업계의 반발도 과소평가했다"고 시인했다.
홍콩 재계는 범죄인 인도 법안이 통과될 경우 홍콩의 자유로운 기업 환경에 의구심을 품는 외국인 투자자 등의 이탈로 '동아시아 금융 중심'으로서 홍콩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찬 의장은 "12일 발생한 일은 우리가 보고자 했던 일이 아니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정말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는 향후 더 많은 충돌을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홍콩 정부는 법안 통과 가능성을 고려해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나는 입법부가 단 하나의 입법 때문에 마비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찬 의장에 이어 지난 2017년 캐리 람 행정장관의 선출 당시 그의 선거운동본부 대변인으로 일했던 측근 타이킨만마저 범죄인 인도 법안의 철회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져 친중파 내의 법안 연기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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