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간 아베의 중재외교 '빈손'…日정부 "중재 의도 아냐" 발뺌(종합)

입력 2019-06-13 19:59
이란 간 아베의 중재외교 '빈손'…日정부 "중재 의도 아냐" 발뺌(종합)

로하니 대통령, 아베 면전서 미국 비판…하메네이 "트럼프 발언은 거짓말"

日언론 "이란의 '원유금수 해제' 요구 美 받아들일 가능성 낮아"

日정부, 기대감 낮추며 역풍 방지 나서…'선거용 퍼포먼스' 비판도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이란을 방문해 현지 지도자들을 잇달아 만나며 미국-이란 간 중재 외교에 나섰지만, 미국과 이란 사이의 입장차만 확인하며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이 미국-이란 간 중재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며 발을 빼는 등 이란 방문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동 내 긴장의 뿌리는 이란을 겨냥한 미국의 경제 전쟁(제재)이다. 이 전쟁이 끝나야 중동과 세계가 긍정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등에 업고 이란에 건너간 아베 총리의 면전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 것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일본이 중동 내 안정에 필요하다면서도 미국과 갈등을 중재하거나 협상을 매개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로하니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이란에 대한 원유 수출금지 제재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미국 측에 전달해 달라고 아베 총리에게 요청했지만,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도쿄신문은 "미국 정부가 이런 이란 측의 요구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며 "이란은 앞서 오만 등 이웃 국가에 '미국이 원유 금수를 중단하면 대화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말을 미국 측에 전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란 내에서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이 '제2의 닛쇼마루(日章丸)'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지만, 아베 총리가 이란에 대해 압력을 강화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향을 전달하고 올 뿐이라면 중개가 곤란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닛쇼마루는 이란이 석유 시설 국유화 조치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돼있던 1953년 일본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란의 원유를 수입할 때 원유를 실었던 일본 유조선이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에 대해 이란 내에서 기대감과 함께 냉소적인 시선이 존재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 아베 총리가 와도 이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 테헤란 시민의 말을 전했다.

아베 총리는 13일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도 예방했지만, 이 자리에서는 이란과 미국의 입장차만 더욱 부각됐다.



아베 총리는 예방 후 기자들에게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핵무기를 제조도, 보유도, 사용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 확보를 위해 커다란 진전이라고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도통신에 따르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예방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체제 전환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예방 후 성명을 통해 "아베 총리가 미국이 이란과 성실히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지만, 미국의 말은 신용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 성과에 대한 비관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이날 아베 총리가 이란을 방문한 것이 미국과 이란 사이를 중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미국과 이란 간 중재를 의도하고 이란을 방문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기대치 낮추기'에 나선 것이다.

이번 중재 외교가 애초부터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적었던 만큼 일본 내에서는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을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로 보는 시각이 많다.

러시아와의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협상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해 머쓱해진 아베 총리가 이란 방문을 자국의 유권자들에게 적극 알리며 올해 여름 참의원 선거에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마쓰나가 야스유키(松永泰行) 도쿄외국어대(이란정치) 교수는 교도통신에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은 양국간 우호에는 의미가 있지만, 이란을 둘러싼 '긴장 완화'와 관련해서는 효과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란 입장에서는 긴장이 고조된 이유는 미국에 있는데 이란에만 자제를 요구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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