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명 시위에도 홍콩당국 "범죄인 인도법안 강행"…中 "지지"
홍콩 입법회, 12일 법안 표결…캐리람 "인권 보호장치 마련하겠다"
美·英·캐나다·대만 등 비판에 中 외교부 "외부세력 개입 반대"
(홍콩 베이징=연합뉴스) 안승섭 김윤구 특파원 = 지난 9일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에 100만 명이 넘는 홍콩인이 참가했지만,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법안을 강행할 뜻을 밝혔다.
중국 정부는 홍콩 당국이 입법을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법안에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는 한편, 미국과 영국, 캐나다, 대만 등에서 이 법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데 대해 "외부세력의 개입에 반대한다"며 선을 그었다.
캐리람 행정장관은 10일 언론 기자회견을 통해 "시위 참가자들이 이 법안에 대해 제기한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이들의 두려움을 없앨 수 있도록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안전장치는 법적인 효력을 가질 것이며, 범죄인 인도는 법에서 정한 조건을 충족할 때만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정부는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범죄인 인도 법안'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홍콩의 야당과 시민단체는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면서 반발하고 있으며, 전날 반대 시위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0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이 참가했다.
하지만 캐리람 장관은 법안 추진을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면서 "이 법안은 홍콩의 정의를 지탱하고 홍콩이 다른 나라나 지역과 함께 범죄에 맞서 싸워야 하는 국제적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날 시위에서 자신에 대한 사퇴 요구가 쏟아져 나온 것에 대해서도 "2년 전 취임한 후 최선을 다했으며, 홍콩이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친 때에는 안정된 정부가 필요하다"고 밝혀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홍콩 입법회는 12일 범죄인 인도 법안 표결을 할 예정이다.
캐리람 장관의 강행 의사에도 불구하고 홍콩 시민들은 물론 다른 나라나 지역에서도 법안에 대한 반대 의사 표명이 잇따르고 있다.
이 법안의 추진 계기가 된 사건의 발생 지역인 대만도 입법에 반대한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냈다.
지난해 한 홍콩인이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했으나, 홍콩과 대만 간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이를 송환하지 못하자 홍콩 정부는 이를 빌미로 삼아 범죄인 인도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전날 밤 페이스북에 홍콩 시위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서 "홍콩 사람들이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중국에 이송하는 악법'으로 여겨지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고 적었다.
나아가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비판하면서 "일국양제 하에서 22년 만에 홍콩인의 자유는 더는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이 됐고, 과거에 자랑하던 현대적 법치제도도 점차 무너지고 말았다"며 "대만이 깊은 경각심과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일국양제는 1997년 홍콩 주권반환 후 50년간 중국이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되,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한 것을 말한다.
앞서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과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외무장관도 공동성명을 내고 범죄인 인도 법안을 비판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이 홍콩에 거주하는 영국과 캐나다 시민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한다"며 "이 법안은 홍콩의 신뢰도와 국제적 명성을 크게 해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지난달 홍콩의 민주화 지도자인 마틴 리 전 민주당 창당 주석을 만나 "홍콩 정부가 제안한 법안은 홍콩의 법치주의를 위협한다"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100만명이 참가한 반대 시위와 미국 등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범죄인 인도법안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재차 표명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중앙 정부는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가 (범죄인 인도와 관련한) 2가지 조례를 개정하는 것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외부세력도 홍콩의 입법 활동에 간섭해 잘못된 언행을 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외부세력이 어느 나라를 칭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동안 조례 개정 문제를 놓고 일부 국가가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범죄인 인도 법안이 홍콩의 법치를 위협한다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겅 대변인은 홍콩 주민의 7분의 1이 거리로 나선 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홍콩의 주류 민심은 조례 개정을 지지한다"면서 80만명 이상의 주민이 개정안 지지 서명을 했다고 이유를 들었다.
한편,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군중이 시위에 참여한 것은 '홍콩의 중국화'를 밀어붙인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이 배경에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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