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의 神 연광철의 눈부신 귀환…'바그너 갈라' 리뷰

입력 2019-06-10 06:00
베이스의 神 연광철의 눈부신 귀환…'바그너 갈라' 리뷰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올해 제10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폐막공연은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갈라'였다.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발퀴레' 1막과 바그너 최후의 역작 '파르지팔' 3막이 오페라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무대에 올랐다.

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공연에서 독일 출신 로타 차그로섹이 지휘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무대 아래 공간인 오케스트라 피트가 아닌 무대 위에 자리 잡았다. 주역 가수들은 콘서트 드레스 차림으로 앉거나 서서 노래했다. 국립오페라단은 2018년 '유쾌한 미망인' 공연의 대사관 무대 세트였던 신전 형태 배경을 재활용해 바그너 갈라에 적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발퀴레' 1막에서 첫눈에 반한 지그문트와 지클린데가 긴장과 설렘을 안고 대화를 나눌 때 지클린데의 남편 훈딩이 귀가한다. 무대 오른편에서 단호한 걸음걸이로 위엄 있게 등장한 훈딩은 팬들에게 '갓(God) 광철'로 불리는 세계적 베이스 연광철이다.

"두 랍테스트 인?(Du labtest ihn?)" 이 한마디에 관객들이 눈을 크게 뜨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낯선 남자를 집에 들이고 귀한 벌꿀 술까지 내준 아내를 발견하고는 '지금 저자에게 마실 걸 주며 돌보고 있소?'라고 질책하는 장면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와 이방인의 묘한 기류를 단번에 포착해내는 사냥개 같은 감각을 이처럼 완벽하게 표현하는 훈딩은 없었다.

연광철의 신공(神功)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장면은 휴식시간 뒤 이어진 '파르지팔' 3막의 첫 등장에서 반복됐다. 똑같은 무대 출입구를 통해 같은 복장으로 들어왔지만, 성배 기사단의 노(老)기사 구르네만츠가 된 연광철은 자신이 '발퀴레'의 훈딩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임을 걸음걸이에서부터 확연하게 보여줬다. 훈딩의 냉혹한 카리스마와 대조를 이루는 늙은 구르네만츠의 인간적인 깊이를 그는 온몸으로 표현했다.

무대도 의상도 가수를 극중 인물로 포장해주지 않는 '콘서트 형식'이라는 어색한 무대에서 연광철의 노련한 경지는 더욱 빛을 발했다. 발성, 호흡, 발음, 연기.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그러나 교과서로도 결코 배울 수 없는 것은 타고난 음색. 청중의 귀와 마음을 행복감과 위로로 채우는 감동적인 목소리였다.

2013년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 한국 초연 때 타이틀 롤을 맡아 찬사를 받은 영국 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는 바그너 텍스트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더욱 원숙해진 파르지팔을 들려줬다. 콘서트 형식이라는 한계 때문이겠지만 2016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본 그의 지그문트에 비하면, 극적인 에너지는 다소 아쉬웠다. 그러나 가창에 집중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음색은 당시보다 유려했고 표현은 더욱 섬세했다.

지클린데 역 미국 소프라노 에밀리 매기는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풍성한 음량과 호소력 있는 음색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영어식 악센트를 느낄 수 없는 명료한 발음과 극중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는 탁월한 표현력은 배역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 관객들은 "바그너 소프라노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르지팔'의 암포르타스 역을 노래한 바리톤 양준모는 2013년 초연 때 클링조르 역으로 찬사를 받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는 끔찍한 고통 때문에 죽음을 열망하는 성배의 왕 암포르타스를 명징한 발성과 에너지 넘치는 연기로 표현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2013년 지휘자 로타 차그로섹과 호흡을 맞춘 경험을 되살려 '발퀴레'보다 '파르지팔'에서 눈에 띄게 밀도 있고 안정감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발퀴레' 도입부가 다소 불안정했고 개별 악기의 실수는 있었지만 두 작품에서 모두 음악적 긴장과 응집력을 끝까지 잘 유지해갔다. 성악이 없는 부분에서 오케스트라는 바그너 관현악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특히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발퀴레'에서 금관이 찬란하게 터져 나와야 할 때 그 효과가 약했던 것은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오케스트라가 너무 무대 뒤쪽으로 배치돼 소리가 더 작게 들렸겠지만, 네 대 하프와 네 대 바그너 튜바까지 동원한 90명 오케스트라 음량으로는 전반적으로 약하게 느껴졌다. 국립합창단과 CBS소년소녀합창단의 가창은 훌륭했지만, 역시 맨 뒤에 서야 했기 때문에 평소 무대 공연에 비해서는 합창 효과가 약해 아쉬웠다.



rosi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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