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수많은 현상 원인은 성리학' 견해 부적절"

입력 2019-06-09 08:25
"'조선시대 수많은 현상 원인은 성리학' 견해 부적절"

허태용 교수 '역사비평'서 주장…"인과관계 정확히 따져봐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은 유교, 특히 성리학을 중심 이념으로 삼은 나라였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도시를 설계하고, 국가를 운영했다. 민간에도 성리학은 널리 퍼졌다.

이로 인해 오늘날 성리학은 조선왕조 멸망과 근대화 실패 원인을 논할 때면 십중팔구 거론된다. 나아가 보수적이고 전근대적인 성리학 때문에 조선은 변화를 시도하지 못했고, 결국 국권을 빼앗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반대로 조선 조정이 펼친 구휼 활동과 신문고 설치 같은 긍정적 정책의 배경에 성리학이 존재한다는 분석도 있다.

도식적으로 역사를 설명한 책에는 사상사 측면에서 '고려는 불교, 조선은 유교'이고, 조선시대 후기에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실학이 등장했으나 성리학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는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의 원인을 무조건 성리학으로만 이해하려는 시각은 논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조선 후기 사상사를 연구하는 허태용 충북대 교수는 계간지 역사비평 최신호를 통해 "역사 해석에서 인과관계에 대한 신중하고 다면적이며 종합적인 접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며 "성리학을 조선시대 역사의 많은 현상을 일으킨 원인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적절하다고 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허 교수는 '성리학으로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연구 경향의 비판적 고찰'이라는 글에서 국내외에서 특정 사상을 역사적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태도는 문제의 소지가 작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상적 요소를 역사의 동인으로 보려는 이유에 대해 연구자의 심리적 편견이 투영됐을 가능성이 있고,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선동에 유리한 측면이 있으며, 비판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안전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허 교수는 19세기 영국이 기독교 영향으로 노예제를 폐지했다는 설명을 들으면 기독교가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사상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프랑스 국민공회가 1794년 노예제를 법령으로 폐지했을 당시 사회에 반기독교 기운이 넘쳤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사정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선 후기에 주체적 역사학과 국어학, 현실적 문학이라는 새로운 사조가 열린 것은 실학이라는 학풍이 대두됐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마치 인과적 설명이 마무리된 듯한 분위기가 조성된다"면서 설령 이러한 설명이 불만족스러워도 반론이 쉽지 않아 설득력을 얻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체제 교학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어떤 역사 현상이 성리학으로 인한 것이라는 설명은 공기에 산소가 포함됐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이어 "조선시대에도 상황마다 성리학이 차지하는 비중과 모습과 역할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며 "그런데도 모든 사건의 원인을 성리학으로 돌리는 것은 관념론적 환원주의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허 교수는 "역사학에서 편의적으로 특정 시점과 공간을 잘라내서 특정 사건이나 현상의 인과를 판단하려는 시도는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기 마련"이라며 "복잡한 요소들을 늘 입체적으로 고찰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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