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편찬한 '고려사', 고려 황제제도 핵심 삭제"

입력 2019-06-06 07:15
"조선이 편찬한 '고려사', 고려 황제제도 핵심 삭제"

노명호 교수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사료적 특성'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원왕(元王) 이상은 참람하게 흉내 낸 사실이 많다. 지금 그 전에 종(宗)이라 했던 것은 왕(王)으로 서술하고, (중략) 짐(朕)은 여(予)로 서술하였으니, 명분을 바르게 하기 위함이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과 정총은 '고려국사'를 쓰면서 중국을 향한 사대에 어긋나는 고려 황제제도를 '참의지사'(僭擬之事)라고 했다. 분수에 맞지 않게 중국을 모방해 황제를 운운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역사 인식은 조선 세종 31년(1449)부터 문종 1년(1451)까지 편찬한 관찬 사서인 '고려사' 기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황제제도를 그대로 적을지, 아니면 고쳐서 쓰는 개서(改書)를 할지가 문제였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조선이 술이부작(述而不作), 즉 자료에 따라 서술하고 작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 만큼 '고려사'가 객관적인 자료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고려 황제제도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고려사 연구자로 오랫동안 '고려사'와 1차 사료 사이 간극을 고민한 노명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신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사료적 특성'에서 이 같은 견해를 강하게 반박한다.

그는 "역사학계는 '고려사' 서술에 적용된 술이부작 원칙의 객관성을 과도하게 평가했고, '고려사' 편찬의 직서(直書) 원칙을 거의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면서 "직서에 대한 기존 이해는 근본적으로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고려사' 편찬 당시 세종이 직서를 고집했지만 신료들의 반발이 극심했다고 설명하면서 "편사자 다수는 사대명분론에 투철한 사람들이었다"고 지적한다.

'고려사' 편찬자들은 '황제'와 '천자'라는 위호를 금기어로 여긴 것은 물론 황제제도 핵심인 '대사천하'(大赦天下)에서 '천하'를 빼버렸다. 천하라는 단어는 황제가 아닌 인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저자는 "'고려사'에는 고려에서 중요한 구성단위였던 국경 밖의 '기마주'(국경 너머에 사는 이민족 집단)에 대한 자료도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며 "고려를 맹주로 하여 고려의 관작을 받기도 하고 팔관회에 참석하기도 한 '번'(藩)을 일컬은 고려 국경 밖 집단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고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고려사'에서 고려 황제제도에 관한 핵심은 사실상 삭제됐고, 파편만 여기저기에 남았다는 것이 저자 생각이다.

아울러 그는 제한적 직서 원칙이 적용된 '고려사'로 인해 고려 황제제도가 후대에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의미가 축소됐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약 3세기 반 정도에 걸쳐 존재한 고려 황제제도가 국내외에서 일어난 각종 문제에 대한 대처 방법이었다고 규정하면서 고려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서문에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편찬 방침에는 조선 전기 지배층의 주자학과 사대명분 이념이 철두철미하게 투영됐다"며 "편찬 방침에 대한 오해는 광범위한 왜곡을 만들었고, 그것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식산업사. 344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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