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는 전사자 유해발굴, 휴일에는 참전 유공자 봉사
사비 털어 9년간 봉사 이어온 1군단 이문규 상사
(고양=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참전용사 선배들 댁에 경례하고 들어가면 함박웃음을 지어 주십니다. 제가 하는 일을 설명하면 숨진 전우들을 찾아달라고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시죠."
육군 1군단 이문규 상사의 주요 근무지는 고양, 파주, 연천 등 경기 북부지역 6·25전쟁 당시 격전지다. 1군단 유해발굴과 소속인 이 상사는 6·25 때 숨진 장병들의 유해를 찾아 가족이나 자손의 품에 돌려주는 일을 한다.
퇴근 후에도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선배들에 대한 헌신은 멈추지 않는다. 이 상사는 개인 시간과 사비를 쓰며 9년째 참전 유공자 대상 봉사를 하고 있다.
현충일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1군단 본부에서 만난 이 상사는 봉사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거창한 이유는 없고, 6·25 전쟁 때 선배들의 헌신 덕에 우리가 잘살게 됐다는 고마움이 컸다"고 말했다.
보병 병과에서 근무하던 이 상사는 이러한 마음으로 2011년 1군단 유해발굴과에 자원했다. 본격적인 봉사 활동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지방자치단체나 보훈단체 복지 시스템에 대해서 잘 몰랐던 때였다. 이 상사는 직접 지역 참전용사 단체 등을 돌아다니며 형편이 어려운 유공자를 찾아내 도움을 줬다.
봉사를 이어가던 이 상사는 2017년 경기북부보훈지청 복지사들과 연을 맺게 되며 마음 맞는 이들과 체계적인 봉사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상사는 "겨울철 한 참전용사 어르신 댁에 핫팩을 드렸는데, 어르신이 고맙다며 편지를 써주셨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며 "한글을 배우지 못해 봉사자들에게 부탁해 내용을 불러주시며 완성한 편지를 받았을 때 제가 더 큰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봉사 활동을 하며 보훈 복지 영역에 눈을 뜨게 된 이 상사는 2011년부터 공부를 하며 사회복지학 학사 학위를 땄고, 현재는 석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참전 유공자들에게 이 상사는 후배 전우이자 최고의 말벗이기도 하다.
이 상사는 "지역에 사는 많은 참전 유공자 어르신은 제가 유해발굴을 하는 격전지에서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다"며 "전투 때 옆에서 숨진 후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전우의 이름을 대며 꼭 찾아달라고 부탁하신다"고 전했다.
또, "팔순이 넘은 고령이라도 전투에 대해서는 너무 선명하게 기억하셔서 유해발굴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상사는 최근에는 고양시에 사는 한 유공자 가정과 1:1 관계를 맺고 돌보고 있다. 88세 남편이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아내를 돌보며 사는 가정이다.
업무 때문에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여유가 날 때 평일에 반일 휴가를 사용하며 사비를 털어 생활필수품 지원을 하고 있다.
이 상사는 "현장에서 많은 봉사자와 복지 담당자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참전 유공자들이 과거의 헌신에 비해 열악한 삶을 살고 있다"며 "맞춤형 복지 서비스가 좀 더 확충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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