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깜박' 기억, 미세전류 자극으로 되살린다

입력 2019-06-03 14:56
'깜박깜박' 기억, 미세전류 자극으로 되살린다

미 UCLA 연구진, '좌뇌 전전두엽 피질' 자극 실험 성공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나이가 들면 잘 아는 사람 이름이나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일이 잦아진다.

처음 지각할 때 충분히 주의하지 않아 기억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뇌에 형성된 기억을 까맣게 잊어, 제때 상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추론 등 고차원적 사고에 관여하는 좌뇌 전전두엽 피질(left rostrolateral prefrontal cortex)이, 망각의 늪에 빠진 기억을 되살리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부위 피질에 미세 전기자극을 가하면 기억을 인위적으로 되살릴 수 있다는 것도 처음 확인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제시 리스만 심리학과 교수팀은 이런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저널 오브 코그니티브 뉴로사이언스(Journal of Cognitive Neuroscience)'에 발표했다.

2일(현지시간) 온라인(링크 [http://www.eurekalert.org/pub_releases/2019-05/uoc--ase053119.php])에 공개된 연구 개요에 따르면 눈썹과 머리 선 사이 아래에 있는 이 부위는 지금까지, 과거에 축적된 지식에 접근해 그 안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만 알려졌다.

리스만 교수는 "전기자극으로 이 부위의 흥분도를 높이면 기억 기능의 수행을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평균 연령 20세의 남녀 72명을 세 그룹(각 남성 11명, 여성 13명)으로 나눠, 컴퓨터 스크린에 80개 단어를 연속해서 보여준 뒤 다음날 각 단어의 연상 이미지에 대해 기억력, 추론능력, 시각적 지각능력 등을 테스트했다.

실험 참여자는 이 부위 피질에 약한 전류를 흘려보내 신경세포(뉴런)의 흥분도를 조절하는 기구를 머리에 착용했다. 이 '경두개 직류자극법(tDCS)을 쓰면 대부분의 피험자는 처음 몇분간 따뜻하고 약간 얼얼한 느낌을 받는다.

처음 30분간 모든 피험자에겐 '가짜 자극'이 가해졌다. 이는 가벼운 자극을 느낄 정도로 잠깐 전류를 보내다가 곧바로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 30분 동안 첫째 그룹에는 뉴런 흥분도를 높이는 자극을, 둘째 그룹에는 뉴런 흥분도를 낮추는 자극을, 셋째 그룹에는 '가짜 자극'을 가하고, 어느 그룹이 전날 본 단어를 가장 잘 기억해 내는지 분석했다.

똑같이 가짜 자극이 가해진 처음 30분 동안엔 세 그룹 간에 전혀 차이가 없었지만, 나머지 후반 30분에는 기억 능력에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흥분 자극을 받은 그룹의 '기억 점수(Memory scores)'가 가짜 자극을 받은 그룹보다 15.4%포인트나 높았다.

반면 전반 30분과 후반 30분 모두 가짜 자극을 받은 그룹의 기억 점수는 2.6%포인트 올랐고, 후반에 뉴런을 억제한 그룹도 5%포인트 상승에 그쳐, 둘 다 통계적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추론과 지각능력을 보는 나머지 두 시험에서도 세 그룹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

리스만 교수는 "약한 전류로 뇌를 자극하는 게 마술처럼 기억을 되살리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잠재적으로 인간의 기억 강화에도 이 방법을 쓸 수 있다는 고무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리스만 교수는 기억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른 부위가 뇌에 더 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향후 연구 목표도, 그런 부위들의 기억 회복 작용과 전기자극이 여기에 미치는 영향 등을 규명하는 데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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