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미의식 고취에도…디즈니랜드·스타벅스·애플 '북적'

입력 2019-06-03 13:09
수정 2019-06-03 17:20
中 반미의식 고취에도…디즈니랜드·스타벅스·애플 '북적'

미국 '소프트파워'에 익숙해진 中 젊은층 불매운동 동참에 소극적

중국 내 고용 영향·美 자극 등도 변수…'사드' 때와는 다른 모습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2일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뮤지컬 극장에서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제곡이 울려 퍼졌다.

'렛잇고'라는 뜻의 '수이타바(隨他파[口+巴])라는 중국어 가사가 나오며 노래가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무대 가운데 바닥이 천천히 솟아오르며 엘사 분장을 한 배우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1천여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무대 위 '아이샤'(엘사의 중국식 발음)를 따라 '수이타바'를 함께 불렀고 흥에 겨운 어린이 관객들은 무대 앞 공간에서 신나게 춤을 췄다.

무역 갈등으로 시작한 미중 간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관영 매체의 노골적 부추김 속에서 중국 내 일각에서 미국 제품과 서비스 불매운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본토의 유일한 디즈니랜드인 이곳에서 미중 무역 전쟁의 분위기를 찾기는 어려웠다.

이날 디즈니랜드에는 여느 일요일과 다름없이 수만 명이 찾아왔다. 간혹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긴 했지만, 대다수 입장객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연인, 친구 등 젊은 중국인들이었다.

미키마우스 귀 모양의 머리띠를 한 이들로 가득 찬 디즈니랜드에서 인기 놀이기구를 타려면 한 시간 이상 기다리는 일이 예사였다.



어린 자녀와 함께 온 한 중국인 관람객은 "비록 몸은 힘들지만 아이가 즐겁게 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도 인파가 끊이지 않는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모습은 1978년 시작된 개혁개방 이후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미국의 '소프트 파워'에 익숙해진 젊은 중국인들에게 '반미 정서'를 주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최근 중국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인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최종회 방영이 무산된 일도 있었지만 많은 중국인은 여전히 미국 영화에 열광하고 있다.

앞서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어벤져스 4)이 중국에서 상영된 외국 영화 중 역대 최대 수입을 갱신했고, 요즘은 디즈니 실사 영화 '알라딘'이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미 젊은 중국인들의 삶에 깊이 들어간 스타벅스와 애플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화웨이(華爲)를 '블랙 리스트'에 올리는 등 대중 압박을 노골화하면서 중국의 인터넷에서는 미국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스타벅스와 애플 제품을 보이콧하자는 목소리가 들끓어 오르고 있다.

하지만 중국 곳곳의 스타벅스 매장과 애플 스토어에는 고객의 발걸음이 유의미하게 주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31일 상하이의 고속철 전용 역인 훙차오역 내의 스타벅스 간이 매장에는 고객들 수십명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들기까지 20분 이상 시간이 걸렸지만 밀려드는 고객들로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근처의 다른 중국 커피 브랜드 매장에는 주문을 위해 줄을 선 채 기다리는 이들을 거의 볼 수 없어 대조를 이뤘다.

온라인에서 들끓는 '애국주의 소비' 열풍에도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대부분 애플 스토어에는 여전히 많은 고객으로 붐빈다.

아이폰 등 미국 제품 불매운동을 둘러싸고 누리꾼들 사이에 갑론을박도 이어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험한 분위기 속에서도 미국 제품 불매운동을 마뜩잖게 보는 시각도 존재하는 것이다.



누리꾼 '透明人**'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미국 영화, 스타벅스 불매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하자, 다른 누리꾼은 이 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쓰는 기기로 작성됐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불매운동을 하려면 당신 휴대폰의 안드로이드부터 하라.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댓글을 달았다.

'百姓**'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은 "어떤 이는 애플 불매를 해야 애국이라고 하지만 뭘 쓰든 상관이 없다"며 "국가, 간부는 바꿀 수 있어도 백성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중앙(CC)TV가 낡은 한국전쟁 영화를 잇달아 방영하는 등 '반미 항전 의식'을 고취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공식적으로는 미국 제품 불매운동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과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직후 중국 전역의 학교는 물론 심지어 유치원에서까지 한국제품 불매 결의대회를 열면서 대대적인 한한령(限韓令)을 내렸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비록 최근 미국과의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확대·격화하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 대화를 통한 협상 타결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당국이 나서 전면적인 미국 상품 불매운동에 불을 붙이는 것은 미국 정부의 추가 반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중국에서 아이폰 등을 생산하는 애플을 비롯해 스타벅스나 디즈니랜드 같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 현지에서 상당한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회사 불매운동이 중국 근로자들에게 타격을 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큰 편이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최근 '적수에 따른 중국의 대처에 강·온 차이가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주먹과 머리'가 큰 미국을 상대로 한 중국의 태도는 전과 차이가 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ch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