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드라마·K팝 댄스…런던에는 한류가 흐른다
주영한국문화원 K팝 아카데미, 7년간 450명 배출
(런던=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이것 좀 보세요. 유니언잭이랑 태극기를 합쳐서 그린 거예요. 예쁘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만난 사라 다팔라(16) 양은 직접 그린 그림을 자랑스럽게 펼쳤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꽃을 그린 부채, 한복 인형옷, 한국 역사를 도표로 정리한 것까지 사라 작품은 품에 다 안기 벅찰 정도로 많았다.
사라는 최근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K팝 아카데미'를 수료했다. 제목은 K팝이지만 이곳에서 배우는 건 한국문화 그 자체다.
닐자 애니밸(28) 씨가 올해 봄 수강한 과목은 탈춤. 그는 한국 판소리가 자신의 고향인 포르투갈 전통음악 '파두'(12현으로 된 악기 기타라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와 비슷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시니드 크로미(17) 양은 "2년 전에 한국 축제를 갔다가 이곳을 알게 됐다. 올해 봄학기에 다양한 걸 배웠는데 한국 건축과 패션에 대한 내용이 제일 재미있었다. 언젠가 건축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처럼 학생들은 10주짜리 다채로운 과정을 수료하면서 간단한 한국어 회화 쯤은 유창하게 했다.
한국문화원이 'K팝 아카데미'를 만든 건 2012년. 소녀시대, 원더걸스, 샤이니 등을 주축으로 한 2세대 아이돌 영향력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다. 그동안 배출한 졸업생은 450명이 넘는다. 학기별로 서른명을 선발하는데, 경쟁률이 2:1에 달할 정도로 치열하다. 지원자는 10∼20대가 많았지만 차츰 40대 이상도 늘어나는 추세다.
졸업생들은 어엿한 한국 전문가이자 '민간 외교관'으로 성장했다. 유럽 곳곳에 뿌리내려 한국문화를 자발적으로 전파한다.
7년 전 1기를 수료한 루비 제임스(22) 양은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대학원(SOAS)에 진학, 한국어를 전공한다. 그는 또박또박한 우리말로 "K팝에 관심 있는 영국 사람이 많아지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해요. 원래 아는 사람만 알았는데 지금은 다들 알아요"라고 말했다.
지중해 아름다운 섬나라 몰타에서 온 미셸 파리스(35) 씨는 학생들에게 하프 연주를 가르친다. 그는 최근 학생들에게 방탄소년단이 유엔본부에서 한 '스피크 유어셀프' 연설을 보여줬다고 했다. "아무 꿈이 없다는 아이들, 자살하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런 아이들도 RM의 연설을 보면 조금씩 달라지더군요."
태미 제인(33) 씨는 MBC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 도전한 끼 넘치는 아가씨다. 지금은 홈쇼핑 채널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K팝 댄스 강사로도 활동한다. 태미는 "걸그룹 춤이 커버하기 쉽긴 하지만 역동적인 보이그룹 춤이 더 인기가 많다"고 귀띔했다.
외교 최전선에서 뛰는 공무원들이 피부로 느끼는 한국의 위상 변화는 격세지감이다.
주영국대사관 민성호 문화홍보관은 "7∼8년 전 영국에서 낯선 사람을 만날 때만 해도 'South or North?'라는 질문만 받았다. 요즘 현지 밀레니얼 세대들은 한국이 음악, 영화, 패션, 화장품 등을 선도하는 '힙'한 나라라고 인식하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남은 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한국문화에 관심가진 분들이 아직은 청소년이 많은데, 이를 보다 넓은 연령대로 확대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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