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반대론 직면 트럼프의 '멕시코 관세'…"극우성향 밀러作"
'경제이념 대척점' 므누신·라이트하이저도 한목소리 반대
경제계 "백악관 상대 소송 검토"…공화당 내에서도 우려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불법 이민을 막겠다면서 불쑥 꺼내든 '대(對)멕시코 관세카드'에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경제적 충격을 우려한 재계는 물론이거니와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통상·경제정책을 책임지는 핵심 경제라인들도 반대하는 분위기다.
경제매체 CNBC 방송은 31일(현지시간) 익명의 당국자를 인용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멕시코산 수입품에 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멕시코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대체하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합의안의 비준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멕시코는 USMCA의 의회 비준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므누신 장관이 자유무역을 신봉하는 협상파라면, '강경 매파'로 꼽히는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트럼프식 관세폭탄'을 현장에서 지휘하는 통상사령탑이다.
라이트하이저 대표까지 반대할 정도로 '멕시코 관세 카드'의 후폭풍이 크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CNBC 방송은 "경제 이념이 정반대인 므누신 장관과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한목소리를 내는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백악관의 피터 나바로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를 옹호하기는 했지만, 나바로 국장의 정치적 입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추세를 감안하면 경제·통상 참모진 내에서도 회의적 기류가 우세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의 대표적 경제단체이자 기업 이익단체인 상공회의소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나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상공회의소는 "백악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공회의소의 존 머피 국제문제 담당 수석부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멕시코 관세에 대한 대응으로 "모든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법적인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닐 브래들리 정책담당 부회장도 멕시코 관세와 관련해 "법적인 문제점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미 상공회의소는 미 전역에 걸쳐 300만개가 넘는 기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계 최대의 비즈니스 조직이다. 워싱턴DC에 자리 잡고 친기업 정책 제언과 로비 활동을 하는 대표적 기업 관련 이익집단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친(親)기업 정책'을 표방해온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재계 차원에서도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나왔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공화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 찰스 그래슬리 상원 금융위원장은 전날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관세 권한 남용"이라며 "이번 관세부과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의 의회 비준을 심각하게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같은 당 조니 언스트 상원의원(아이오와)도 이날 성명에서 "관세부과를 강행한다면 USMCA가 결승선에 다가가도록 하는 진전이 가로막힐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로널드 와이든 상원의원은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관세는 미국 소비자가 부담하게 되고 멕시코의 보복은 미국인 노동자를 해치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무엇보다 '멕시코 관세 카드'는 경제·통상 이슈와는 무관한 불법 이민을 대응한다는 명분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미 언론들의 평가다.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바꾸겠다는 명분의 '대중(對中) 관세장벽'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북미 경제권으로 묶여있는 멕시코를 겨냥한 것이어서 미국 실물경제에도 상당한 부메랑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후 부품 업체들이 북미 대륙에 포진한 자동차산업이 직격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거센 후폭풍에도 정치적으로 강행한 셈이다. 불법이민 대응은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강조한 이슈다.
이와 관련, CNBC 방송은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이민정책 강경파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고문이 밀어붙인 아이디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으로도 불리는 밀러 선임고문은 초강경 이민정책의 설계자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커스텐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이 최근 전격 경질되면서 극우성향의 밀러 고문이 한층 강경한 이민정책을 지휘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j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