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당 김은호가 그림 초본을 많이 남긴 까닭은

입력 2019-05-30 19:21
이당 김은호가 그림 초본을 많이 남긴 까닭은

국립중앙박물관·근현대미술사학회 '근대 서화' 학술대회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세조 어진(御眞·임금 초상화) 초본(草本)을 그린 화가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는 유독 많은 초본을 남겼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6년 이당 유족으로부터 유품 400여 점을 구매했는데, 그중 37점이 초본이다. 37점 가운데 정본이 있어 제작 시기 유추가 가능한 작품은 27점이다.

중앙박물관이 안중식 100주기를 맞아 마련한 특별전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와 연계해 내달 1일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와 개최하는 학술대회에서 권혜은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김은호 초본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한다.

30일 배포된 발제문에서 권 연구사는 "김은호 초본의 화면 크기는 대체로 정본과 동일하며, 공을 들여 제작한 흔적이 확인된다"며 "인물화 초본은 붓으로 완성한 후에 여러 차례 수정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부 초본은 정본을 완성하기 전의 단순한 바탕 그림이 아니라 정본에 참고하기 위한 밑그림이었다"며 "대다수 초본은 낱장이 아니라 배접을 하고 액자에 보관하거나 매트지에 고정했다"고 부연했다.

권 연구사는 "김은호는 상품화에 수월한 대표작을 반복해서 제작한 경향이 초본에서도 나타난다"며 이당이 생계를 위해 그림을 무한 반복해서 재생산했음을 말해주는 근거가 초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초본이 완성품이 아님에도 일부 작품에 '김은호인'(金殷鎬印) 혹은 '백문방인'(白文方印)이라는 인장이 찍혔다는 사실도 주목했다.

권 연구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세조 어진 초본과 2003년 인천시립박물관이 공개한 인물 초상에도 백문당인이 있다"며 "인장 위치가 일정하지 않고 일부 초본에만 있는 점으로 미뤄 이당의 후손이 임의로 찍었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주장했다.



학술대회에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화단에서 일어난 다양한 변화상을 조명한 다채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구체적으로 안중식 작품 세계, 20세기 전반 동양화 개념 형성과 변천, 일본 사노(佐野)시 향토박물관 소장 스나가(須永) 문고, 1920년대 근대화단 재편과 미술교육, 20세기 초 문묘와 공자상을 다룬 발표가 이뤄진다.

한편 중앙박물관은 또 다른 특별전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과 연계해 내달 5일과 12일 오후 7시 30분에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함께 음악회를 연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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