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정보 오류' 명승 성락원 역사 고증한다(종합)
문화재청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 존재 여부 등 조사"
"100년전 조경 잘 보존…명승 지정 취소할 이유 없어"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김지헌 기자 = 문화재 정보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명승 제35호 성락원(城樂園)에 대한 역사 고증 작업이 이뤄진다.
문화재청은 30일 "'조선시대 철종 때 심상응 존재 여부'와 '조선시대가 아닌 정자와 연못' 등에 대해 역사적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하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와 문화재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 필요할 경우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정원 성락원은 일반에 거의 공개되지 않다가 지난달 말에 한시적으로 관람객을 받는다고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성락원은 1992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78호로 지정됐으며, 2008년 명승으로 조정됐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누리집에는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으나,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서울 도성 안에 위치한 몇 안 되는 별서 정원의 하나로 가치가 크다"는 성락원 설명문이 있다.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성락원은 아름다운 조선시대 별서(別墅·교외에 따로 지은 집) 정원으로 널리 알려졌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성락원을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국내 3대 정원으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보면 철종 연간에 이조판서 벼슬을 한 심상응(沈相應 혹은 沈想應)이라는 인물은 없다는 비판이 일부 역사학자와 언론을 통해 나왔다.
실제로 심상응은 승정원일기 고종 35년(1898) 2월 22일 기사에만 경기관찰부 주사에 임명됐다는 내용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울러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성락원을 소유했다는 주장도 입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전통조경학회가 2015년 10월에 개최한 논문 발표회에서 공개된 논문 '명승 제35호 성락원의 경관변화 특성'도 성락원 변화 양상을 분석하면서 1기를 1915년 '조선지형도'로 잡았다.
이어 심상응 4대손이라는 심상준이 1950년 성락원을 소유해 송석정이라는 건물을 세웠고, 2008년 복원화 사업을 통해 옛 모습을 일부 되찾았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내년까지 27억원을 투입해 성락원을 복원사업을 시행할 방침이다. 이 가운데 25억원은 토지 매입 비용이고, 2억원은 정비계획을 수립하는 데 사용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다음 달에 나오는 정비계획 용역 결과를 본 뒤 역사적 사실을 추가로 조사할지 결정하려고 한다"며 "정보가 잘못됐다면 수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심상응이라는 인물에 너무 초점이 맞춰졌는데, 그는 성락원 소유자 중 한 명이라고 알려졌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친왕이 성락원 본채에 오랫동안 거주했다는 사실은 명확하고,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조경이 잘 보존됐다는 점에서 명승 지정을 취소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명승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 동물과 식물 서식지로 경관이 뛰어난 곳, 저명한 경관의 전망 지점, 역사문화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곳, 저명한 건물 또는 정원이 지정 대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명승으로 지정된 이상 부산 태종대 등과 같이 경관적 가치가 중요하다"며 "조선시대 정원이 남아 있고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요소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민들이 심상응이라는 사람들이 살았다는 이유로 성락원에 가 보신 것도 아니고, 현재 상황에서 명승의 가치마저 없다고 판단할 부분은 아니다"며 "관련 역사적 내용이 확정된 후에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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