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세상] '가족 돌봄수당'의 딜레마…"실상 인정해야 vs 책임 전가 우려"

입력 2019-06-01 06:00
[SNS 세상] '가족 돌봄수당'의 딜레마…"실상 인정해야 vs 책임 전가 우려"

"조부모 돌봄수당 확대" "가족도 장애인 활동보조사 되게 해달라" 목소리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황예림 인턴기자 = 최근 어린 자녀나 장애인 가족을 실질적으로 돌보는 조부모 등에게 가족 수당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원 제도가 마련되면 사실상 공공 서비스에 의지하기보다 가족이 직접 돌보는 대다수 가정에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수당을 가족에 지급하기 시작하면 사회가 책임질 부분까지 가족에게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어차피 돌봄은 가족 몫인데 실질적 지원 필요해"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장애인 활동 지원사 자격을 직계 가족도 갖게 해달라"는 글이 게시돼 9천5백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장애인 활동 지원서비스'는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 지원 인력을 파견해 도움을 주는 장애인 복지 제도이다.

청원자는 "중증·발달장애인의 경우 현실적으로 가족이 돌봄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데 가족에 의한 활동 지원은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직계 가족도 지원사가 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지원사 급여를 받고 장애 가족을 돌보는 데 집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가족에 의한 장애인 활동 지원 뿐 아니라 손자와 손녀를 돌보는 조부모에게도 수당을 지급하라는 요구가 높다. 맘카페에서는 서초구 등의 '손주 돌봄 서비스'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서울 서초구는 손주 돌봄 서비스를 통해 손자녀를 돌보는 관내 조부모에게 양육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고 최대 월 24만원의 돌봄수당을 제공한다. 현재 이 서비스를 받는 가정은 362가구인데 교육 대기 인원만 2백여명에 달한다. 광주광역시도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월 25만원씩을 지급한다.

돌봄 노동 가정에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는 요구가 나오는 것은 사회가 분담해야 할 책임을 사실상 가정이 짊어지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라는 뜻에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2명 중 1명은 부모에게 육아 도움을 받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는 장애인의 81%가 가족 구성원에게 활동 보조 등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딸의 자녀를 돌봐온 조은희(66·서울 노원구)씨는 "어차피 손자, 손녀를 할머니, 할아버지가 봐줄 수밖에 없는 사회이고, 또 남의 손에 맡기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며 "어쩔 수 없이 (애를) 봐야 한다면 나라가 수당이라도 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네이버 'ㅁ'맘카페 회원 'na***'는 카페에 글을 올려 "아이를 친정엄마가 봐주시는데 죄송한 마음이 크다. 아이 돌봄 서비스에 맡겨서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갖느니, 차라리 부모님이 봐주시면서 지원을 받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이라며 "몇몇 지자체가 시행 중이라는 조부모 아이 돌보미 서비스가 확대되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중증 장애인 자녀(15)를 둔 김자현(가명)씨는 "활동 지원사는 전문적으로 의료 교육을 받고 투입되는 인력이 아니기 때문에 돌봄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누워 지내야 하는 장애인에게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몰라서 시간만 채우고 가는 지원사도 수두룩했다"면서 "정부의 돌봄 서비스가 중증·발달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이 일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활동 지원사로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경제적 지원, 실질적인 돌봄 정책 못돼…가정에 책임 집중 우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가정 돌봄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정착되면 사회가 져야 할 책임까지 가족이 떠맡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정의 돌봄에 수당 지급 등 경제적 지원을 하며 간접적 도움을 주는 것은 실질적인 복지 정책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따른다.

시가나 친가에 자주 딸(3)을 맡기는 이지선(37˙가명)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해도 하원 뒤 나와 남편이 퇴근하기 전 시간이나 주말에 볼일이 있을 때는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수당을 드릴 수 있다면 좋아하실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그렇게 점차 나라가 해야 할 일을 가족이 하는 게 되면 나중에 보육 제도가 다 가족의 손에 맡겨질지 몰라 걱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네이버 'ㅅ' 카페 회원 '파랑***'는 조부모 돌봄수당에 대해 "나라에서 애는 할머니가 키우라고 종용하는 건지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싶네요. 조만간 '엄마는 나라에서 돈도 준다는데 왜 내 아이 안 키워줘'라는 소리도 나오겠네요"라며 비판했다.



장애인 활동 보조서비스의 경우 가족이 보조인이 되면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보장한다'는 본래 취지를 해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다양한 사람과 교류 없이 온전히 가족이 돌보는 방식으로는 장애인의 독립적인 삶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최중증장애인 자녀가 있는 경상북도장애인부모회 김신애 회장은 "중증 장애인이라고 해도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권리가 있는데 도구적 지원만 해주는 활동 지원사와 달리 부모는 자녀의 사고와 행동을 일일이 제약할 수 있다"며 "따라서 장애인의 선택권이 과도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 돌봄 노동의 제도화가 여성을 돌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있다. 실제로 가정에서 이뤄지는 돌봄 일은 주로 여성이 맡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활동 보조인 중 여성의 비율은 88.4%였다. 육아정책연구소 통계에선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 중 주 양육자가 할머니인 경우가 94.2%로 나타났다.

육아정책연구소 이윤진 부연구위원은 "자녀를 이미 한번 키운 노년 여성에게 손주 돌봄은 이중 노동이 될 수 있다"면서 "노후 보장 대신 국가 차원에서 한 번 더 아이를 돌볼 여지를 마련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다. 또 실제 사업으로 정착된다고 해도 경제적 보상 수준이 높게 책정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 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이미 많은 부모가 조부모에게 자녀 양육을 맡기고 있는 게 현실이라지만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 제도를 갖추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며 "궁극적으로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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