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돌아왔다"…EU서 권토중래 꿈꾸는 스페인

입력 2019-05-29 22:44
"우리가 돌아왔다"…EU서 권토중래 꿈꾸는 스페인

집권 사회당, 3개 선거 잇따라 승리…유럽의회 내 중도좌파그룹 핵심 부상

"마드리드·베를린·파리의 'G3' 원해"…경제위기 털고 EU 핵심국 재도약 모색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경제 위기, 부패 스캔들, 카탈루냐 독립추진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으로 유럽연합(EU)의 핵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던 스페인이 EU 무대에서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스페인의 중도좌파 사회노동당(PSOE·이하 사회당)은 지난달 총선에 이어 최근 유럽의회와 지방선거에서 동시에 승리해 정치적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집권세력의 '유럽 회의론'에 더해 영국이 EU 탈퇴 수순을 밟으면서 생긴 공백을 세 차례 선거에서 잇따라 승리한 스페인 정부가 빠르게 차지하면서 EU 내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다.

◇산체스 총리, 대외활동 시동…마크롱, 메르켈 등 잇따라 '러브콜'

스페인 사회당은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33%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 사회당이 유럽의회에서 확보한 의석은 20석으로, 5년 전보다 6석이 늘었다.

사회당은 또 같은 날 치러진 12개 지역의 광역 지방선거에서 10곳을 석권했다. 지난달 28일 조기 총선에서 비록 과반 의석에는 못 미치지만 제1당에 오른 것까지 한 달 사이 치른 3개 선거에서 모두 승리한 셈이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중도좌파가 1위를 차지한 나라는 EU 주요국 가운데 스페인이 유일하다.

스페인 사회당은 보통 유럽의회 내 사회당 그룹에서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 3위 수준이었는데 판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스페인 사회당의 유럽의회 선거를 이끈 호세프 보렐 외무장관이 평소 "프랑스와 독일은 더는 EU를 전진시킬 입장에 있지 않다. 더 많은 나라가 EU의 리더십에 참여해야 한다"라고 공공연히 말해온 것이 실현된 것이다.

스페인은 이번 선거결과를 바탕으로 유럽의회 내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당(S&D) 그룹에서 역할을 대폭 강화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유럽의회 선거 승리 이후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으면서 곧바로 대외 행보에 나섰다.

산체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선거 이튿날인 27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하며 EU 집행위원장 인선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독일이 미는 중도우파 유럽국민당(EPP) 그룹의 만프레드 베버 후보를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산체스 총리는 28일에는 브뤼셀에서 마크롱,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 안토니우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와 오찬 회동을 했고, 이어 독일 측 제안으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도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산체스 총리는 국내적으로는 야권과 협상을 통해 재집권을 마무리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이번 유럽의회 선거 승리로 유럽연합의 중도좌파 그룹에서 최대 지분을 갖게 된 상황을 십분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산체스의 유럽연합 구상은 유럽통합 심화를 주장하는 마크롱의 의견과 상당 부분 일치해 두 지도자가 향후 의기투합해 EU 논의를 주도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산체스는 유럽연합 차원의 실업 기금, 화석연료에 대한 EU 차원의 '녹색세' 도입, EU 공동예산제 등에 찬성하는데 이는 마크롱의 견해와 일치하고, 독일 집권세력의 생각과는 상충한다.

그는 28일 브뤼셀에서 "고용, 기후변화, 통화·재정연합 강화 등 우리는 '사회적인' 유럽을 원한다"며 자신의 유럽연합 구상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경제위기 등으로 EU 내 영향력 상실…EU 핵심국가 재도약 모색

스페인이 이처럼 유럽연합 무대의 전면으로 복귀하는 것은 그동안 EU에서 주변부 국가로 밀려났던 신세를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변화다.

스페인은 과거 EU의 핵심 국가에 속했다.

금융위기를 맞기 전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총리(2004∼2011년 집권)가 이끈 스페인은 EU의 주요 이슈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스페인 출신 호아킨 알무니아(전 EU 경쟁담당 집행위원), 하비에르 솔라나(전 EU 외교정책대표) 등의 정치인들은 EU의 최고위직에 포진했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오랜 기간 이어진 경제위기, 집권당과 국민당 정부의 광범위한 부패 스캔들, 카탈루냐 지방의 분리독립 추진을 둘러싼 정국불안 등으로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 집권 시절 EU에서 영향력을 크게 상실했다.

스페인의 EU에서의 '권토중래'의 중심에는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적극적인 리더십이 주효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의제에 골몰했던 라호이 전 총리와 달리 산체스는 국민당의 대규모 부패 스캔들이라는 기회를 포착, 라호이 총리 내각을 중도실각시키고 집권한 뒤 국제사회에서 스페인의 적극적인 역할론을 내세우며 활발한 외교를 벌이고 있다.

산체스는 또한 스페인이 EU에서도 아프리카 출신 난민이 많이 몰리는 국가임에도 집권 후 난민 문제에 포용적인 자세를 취해 EU 지도부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여기에다 이탈리아의 높은 국가부채와 집권세력의 반(反) EU 입장, 영국의 EU 탈퇴 등은 스페인이 EU 내에서 움직일 공간을 더 크게 마련해줬다.

스페인 경제가 2.2%의 견실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등 스페인이 오랜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점도 스페인의 EU 내 발언권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스페인은 달라진 위상을 바탕으로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집행위 부위원장 자리를 노리면서 EU 핵심 국가로의 재도약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여기에는 산체스 총리 개인의 성향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페인 정계에서도 손꼽히는 유럽통합론자이자 국제통으로, 잠시 정치권에서 멀어졌을 때도 '스페인 경제외교의 혁신'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마쳤다.

스페인이 앞으로 EU의 양대 핵심 국가인 프랑스·독일과 어깨를 견주겠다는 대담한 발언도 정부 내에서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유럽의회 선거 직후 스페인 정부 고위 관계자가 "우리는 G3, 즉, 마드리드-베를린-파리의 축을 원한다"고 말했다고 27일 전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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