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에 '당근과 채찍' 꺼내든 文대통령…'신상필벌' 메시지
피랍석방 가족 편지 공개하며 "격려"…정상통화 유출엔 "있어선 안 될 일"
'적극행정 면책' 주문과 맞물려 향후 공직사회 방향성 제시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하루 동안 외교부에 격려와 질책의 메시지를 동시에 발신하며 집권 중반 공직기강 다잡기에 나섰다.
주미한국대사관 소속 외교관의 한미정상 간 통화내용 유출을 거론하면서 "기강을 세우겠다"며 날을 바짝 세운 반면 리비아 피랍자 석방 사례에 대해선 외교부를 "격려와 위로"한다며 박수를 보냈다.
공직사회에 대한 '신상필벌'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사자인 외교부로서는 '냉탕'과 '온탕'을 오간 셈인데, 특히 문 대통령의 두 메시지를 바로 앞에서 들은 강경화 장관은 좌불안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 간 통화내용 유출 파문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의사를 표명한 것은 지난 9일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의 내용 공개 이후 20일 만이다. 강 의원에게 통화내용을 알려준 외교관 K씨가 적발된 지 꼭 일주일 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을지태극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국가 외교상 기밀이 유출되고 이를 정치권에서 정쟁의 소재로 이용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며 "변명의 여지 없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개탄했다.
대통령 일정의 모두발언이 사전에 준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이 작심하고 이번 사태를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공직자의 기밀 유출에 대해 국민께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직접 고개를 숙인 것은 이번 사안을 얼마나 엄중하게 인식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고 철저한 점검과 보안관리에 더욱 노력하겠다"며 "각 부처와 공직자들도 일신하는 계기로 삼아달라"고 주문했다.
'질타' 메시지가 나온 지 4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문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편지 한장을 공개했다. 작년 7월 리비아 무장세력에 납치됐다가 315일 만인 최근 풀려난 주 모씨의 딸이 문 대통령에게 보낸 감사의 글이었다.
편지에서 딸 주씨는 부친의 석방이 문 대통령과 정부 노력 때문이라며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깨닫고 위로받는 계기였다"고 썼다.
주씨는 또 피랍사건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외교부 직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편지를 공개하며 "아버지의 무사 귀환에 수고해주신 외교부 공직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가 이분들께 큰 격려·위로가 될 것 같아 공개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유럽순방 현안을 보고하러 전날 청와대를 방문한 강 장관과 10여명의 외교부 직원에게 직접 이 편지를 읽어주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외교부를 향한 질타와 격려가 혼재된 메시지는 집권 중반에 접어든 문 대통령이 향후 공직사회를 이끌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평소 강조해왔던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 공직사회의 적극 행정 주문과 함께 신상필벌을 통한 공직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적극 행정의 면책과 장려는 물론 소극 행정이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 행정을 문책한다는 점까지 분명히 해달라"고 장관들에게 주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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