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버린 세 사람의 초상화…이혜경 '기억의 습지'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중견 소설가 이혜경이 5년 만에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지난해 현대문학 7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기억의 습지'(현대문학)는 그의 전작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전작들에선 해체돼 가는 가족 안에서 고립되는 구성원들의 사연이 부성(父性)의 부정적 측면들과 함께 주로 다뤄졌지만, 이번엔 역사의 피해자로 역사에서 철저히 소외된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베트남 참전 군인인 필성, 북파 공작원이던 '김', 베트남에서 결혼 이민을 해온 응웬. 이 세 사람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비극과 트라우마가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고 소외시키는지 보여준다.
특유의 섬세한 문체와 은유는 서사에 힘을 싣는다. 다만 베트남 참전 군인은 항상 가해자이고, 베트남인은 피해자라는 도식이 이 작품에서도 반복되는 점은 다소 아쉬움을 준다.
이혜경은 에콰도르에서 쓴 '작가의 말'에서 "역사 속에 파묻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다 보니 북파 공작원 이야기까지 곁들여졌다"면서 "한때 목숨 걸고 싸웠으나 지금은 잊힌 이들,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 그게 소설가인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1960년 충남 보령 출생인 이혜경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2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다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소설집 '그 집 앞', '틈새', 장편소설 '길 위의 집', '저녁이 깊다' 등을 남겼다.
'길 위의 집'으로 1995년 오늘의 작가상과 독일 리베라투르상 장려상을 받았고, '피아간'으로 제13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가 됐다. 이밖에도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을 받았다.
이 소설은 현대문학이 진행 중인 '핀 시리즈' 14번째 작품이다. 당대 가장 예리한 작가들을 선정해 작품을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싣고 단행본을 발간하는 샐러리북 프로젝트다. 144쪽. 1만1천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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