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만에 가족 상봉 美입양인 "다신 헤어져 살고 싶지 않아요"

입력 2019-05-29 14:23
47년만에 가족 상봉 美입양인 "다신 헤어져 살고 싶지 않아요"

킴벌리 한 씨, 연합뉴스·중앙입양원 도움으로 친부모 만나

"내가 널 버린 게 아니란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의도치 않게 둘째 딸을 잃어버리고 찾을 길이 없어 생사조차 모르고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살던 부모가 47년 만에 피붙이를 만났다.

아버지 이 씨는 지난 3월 21일 '친엄마 찾을 수 있을까요"…美 입양한인의 애틋한 부탁'이란 제목의 연합뉴스 보도를 접하고 자신의 딸임을 직감했고, 중앙입양원을 통해 친자임을 확인했다.

그의 딸은 생후 6개월 때인 1972년 의도치 않게 부모와 헤어졌고,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 오하이오주에 '오순희'(미국명 킴벌리 한)라는 이름으로 입양돼 지금까지 살아왔다.

한국인 남편과 슬하에 네 자녀를 둔 그는 몇해 전부터 친가족을 수소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입양기록에 친부모 인적사항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탓에 어려움을 겪다가 이번에 꿈에도 그리던 부모를 만난 것이다.

이들의 상봉은 지난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이뤄졌다.

가족들은 어떤 방해도 받고 싶지 않다며 언론의 취재를 정중히 거절했다. 중앙입양원 관계자 2명이 이들 가족의 상봉을 옆에서 지켜봤다.

이들 관계자에 따르면 아버지 이 씨와 어머니 정 씨는 47년 만에 친딸을 만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미국에서 날아오는 비행기 도착시각은 오후 4시였지만 경기도 안산에 사는 이들은 마중을 서둘러 2시간이나 일찍 입국장에 와서 기다렸다. 언니와 형부, 남동생도 함께했다.

비행기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는 벌써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입술이 바싹바싹 타는지 연신 물을 마셨다. 어머니는 입국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다.

예정보다 1시간 늦은 5시께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그대로 달려나가 딸을 껴안고 흐느끼며 눈물을 쏟아냈다.

남편과 함께 온 입양인은 아버지와 언니, 남동생과도 부둥켜안았다.

"보고 싶었다", "엄마", "잘 살아있구나".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아버지를 빼닮은 입양인을 보면서 가족들은 피붙이임을 확인한 이상 서로의 마음만 어루만질 뿐이었다.

한동안 입국장에서 상봉하던 가족들은 옆 벤치에 앉은 뒤에야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동안 속으로만 앓던 말들을 털어놓았다.

"찾을 수가 없었단다. 미안하다. 그리고 잘 살아줘서 감사하다"

"괜찮아요. 저도 고마워요"

부모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누르면서 한숨을 쉬기도 하고, 눈물을 훔쳐내기도 했다. 딸도 그런 부모를 보며 오히려 감사와 위로를 표했다.

공항을 벗어난 저녁 자리는 시간이 좀 흐른 까닭인지 차분했다. 엄마는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내가 널 버린 게 아니란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을 그제야 전했다.

친언니는 "동생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이렇게 잘 살아줘서 아주 기쁘다", 남동생도 "누나라는 존재를 모르고 살았는데. 이렇게 만날 줄이야"라며 기뻐했다.

이들 가족은 곧장 안산으로 떠났고, 6월 중순까지 함께 보낼 계획이다.

킴벌리 한 씨는 "다시는 헤어져 살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한국 국적을 회복해 부모와 함께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중앙입양원은 서류상 연고지가 없는 아동(기아)일 경우 경찰청 DNA 등록, 신문사와 방송사 연계 혹은 복권에 사연을 기재하는 방법 등을 통해 가족 찾기를 진행하고 있다.

ghw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