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세상] 일년내내 '5부리그' 축구팀을 응원하는 이유는?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축구 팬 라대관(30)씨가 나고 자란 경기도 고양시엔 축구팀이 없었다.
월드컵 경기도 직접 관람하러 경기장에 가고, 국가대표축구팀 공식 응원단인 '붉은 악마'에 가입해 활동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는 그에겐 못내 아쉬운 점이었다. 2003년 연고 팀이 생겼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2008년 고양시민축구단이 창단된다는 소식을 듣고 라씨는 최선을 다해 '우리 팀'을 응원하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18일 'K3리그 베이직' 고양시민축구단과 평창FC의 경기가 열린 강원도 평창종합운동장. 라씨는 이날 유일한 고양시민축구단 응원단으로서 경기 시간 90여분 내내 목 놓아 응원가를 불렀다. 7연패 끝에 후반 47분 2-1 승리를 결정하는 페널티킥 골을 넣은 고양의 안명환(21)은 라씨 쪽으로 달려가 90도로 허리를 굽혔고, 라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K3리그 유튜브 채널에 소개된 18일 영상
지난 23일 K3리그 공식 유튜브 채널에 소개된 이 장면은 인터넷상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관련 영상 등을 포함하면 100만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라씨는 29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주목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얼떨떨하다"면서도 "나보다 우리 팀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라씨는 고양시민축구단의 공식 서포터즈인 '울트라스 맥파이(Magpie·고양시의 시조<市鳥>인 '까치'라는 뜻)'의 창단 멤버이자 응원 단장. 서포터즈라고 해야 그를 포함해 두 명뿐. '고양 KB국민은행 축구단' 시절인 2006년에 처음 서포터즈를 꾸려 2012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라씨는 구단이 창단한 2008년부터 올해까지 대부분의 경기를 직접 관람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지방 원정 경기가 있으면 울산이든, 강원도든 직접 운전을 해 찾아갔다. 지난해엔 딱 한 경기를 직접 보지 못했다. 라씨는 "축구장 가던 길에 갑자기 탈이나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본업이 자동차 정비사라는 라씨는 퇴근 후와 주말에 고양시민축구단의 응원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업무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간을 바치는 셈.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고양은 형편이 넉넉한 1부 리그 구단과 달리 바닥부터 시작해서 성장하는 팀이에요"
"무엇보다 내 고향에 축구팀이 있다는 게 좋아요. 그냥 좋아요. 응원할 팀이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행복한 사람이죠"
고양이 속한 'K3리그 베이직'은 3부리그 격인 내셔널리그를 포함하면 5부리그(4부리그는 'K3리그 어드밴스')에 해당한다. 아마추어와 프로팀이 뒤섞인 세미 프로리그여서 구단 재정이 열악하고 팬의 관심도 적다. 고양은 이 리그 안에서도 만년 하위 팀이다. 지난해 4승1무15패로 11개 팀 중 9위였고, 올해는 1승7패로 8개 팀 중 7위(26일 현재)를 기록 중이다. 그러나 라씨는 "승리하면 좋지만, 이기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지난 18일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선수가 골을 넣고 서포터즈에게 인사하는 모습은 응원 인생 10여년 만에 처음 봤어요. 감동해서 눈물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펑펑 울었어요. 2006년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에서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보다 더 감격스러웠어요"
라씨의 마음을 선수도 알고 있었다. 결승 골을 넣고 '인사 세리머니'를 한 안명환은 "경기가 열릴 때마다 혼자 북치고 응원하는 모습을 봤다"며 "언젠가 골을 넣으면 반드시 달려가서 인사해야겠다고 맘먹었는데 그게 오늘처럼 극적인 골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일년 내내 하위리그의 하위 팀을 응원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라씨가 가장 많이 언급한 말은 '우리'였다. '우리 선수', '우리 팀', '우리 구단'. 그에게 이번 주말 일정을 묻자 "6월1일에 서울 중랑구 잔디구장에서 우리 팀 경기가 있다. 응원하러 갈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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