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되고 훼손되는 이탈리아 유산들…재정 탓 속 점차 사라져
英 가디언 "기원전 6세기 고대 유적 등 약탈·도둑 표적되기도"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남쪽 해안의 셀리눈테에는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 식민도시 시절 사용된 채석장 유적이 남아있다. 당시 도시와 신전 건설을 위해 돌을 캐낸 곳이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이곳은 카르타고인들이 쳐들어온 기원전 409년 이후 사실상 버려진 채 폐허로 남아있다. 채석장 여기저기에는 건물을 세울 때 쓰인 기둥과 기둥머리 등이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다고 한다.
이탈리아반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를 일컫는 '마그나 그라이키아' 전문가인 유럽연합(EU) 소속 밈모 마칼루조 연구원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이곳은 지난 수 세기 약탈자와 도둑의 표적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였다면 박물관으로 개조돼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았을 이 유적이 우리 눈앞에서 허물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는 시칠리아 내 버려진 역사 유적지 수백곳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가디언은 28일(현지시간) 셀리눈테의 안타까운 현장 상황을 대표적으로 소개하면서 이탈리아 내 보석 같은 인류 유산이 현지 정부의 빈약한 공공재정 문제로 점점 폐허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는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문화유산 수가 55개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이지만 문화재 보존·관리를 위한 공공재정은 유럽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이 때문에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세계문화유산급 유적이 허다하다.
셀리눈테에서 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시칠리아 수테라 지역 산 마르코 언덕의 작은 동굴도 마찬가지 운명이다. 9세기 바실리우스 수도사들이 세운 이곳은 세계 최초의 산악 예배당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곳은 현재 완전히 방치돼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됐다. 동굴 내부는 잡초만 무성히 돋아난 상태다. 심지어 주변 마을 사람들도 이 동굴의 존재를 잘 모른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등을 묘사한 동굴 내부의 16세기 비잔틴풍 프레스코화도 무관심 속에 심하게 퇴화했다.
이탈리아 정부의 심각한 재정난 속에 버려진 문화재급 성당도 셀 수 없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볼로냐대 고고학과의 루이지 바르톨로메이 연구원은 "바티칸에서 운영하는 성당이 6만7천여개인 데 반해 이탈리아의 지방정부와 다른 종교 조직이 소유한 성당만도 수천개에 달한다"면서 "이 가운데 얼마나 많은 성당이 버려져 있는지는 관련 정보가 없어 산출하기조차 어렵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나폴리만 해도 역사지구 내 200개 이상의 성당 중 75개가 철저히 방치됐다고 분석했다.
버려진 성당 내 약탈 행위도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상태다. 현지 경찰은 이탈리아에서 작년 한 해에만 고고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문화재 8천405점이 도난당한 것으로 집계했다.
유적으로 보존되지 못하고 외면받는 중세 마을의 공동화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탈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지진이나 산사태 등으로 폐허가 된 '중세 유령 마을'이 전국적으로 6천곳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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