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과는 고대 대형 동물과 실크로드 상인 '덕분'에 존재

입력 2019-05-27 16:54
현대 사과는 고대 대형 동물과 실크로드 상인 '덕분'에 존재

곡물 등 재배화 과정과 차이…獨연구팀 논문 발표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장미과(科·Rosaceae)에 속하는 사과는 인류에게 가장 친숙한 과일 중 하나로 꼽힌다.

약 2천년 전에 이미 재배된 것으로 고전에 등장하고, 유럽과 서아시아의 1만년 전 유적에서 야생 사과 씨앗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 상당히 오래전부터 인류가 먹고 재배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재배되고 오늘날에 이르게 됐는지는 불분명했으며, 독일 막스 플랑크 인류역사 과학연구소 과학자들이 그 해답을 내놨다.

27일 이 연구소에 따르면 로베르트 스펜글러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사과가 거대동물이 씨를 퍼뜨릴 수 있게 수백만년에 걸쳐 자연 속에서 진화한 뒤 실크로드 등을 통해 유라시아 지역으로 퍼졌다는 연구 결과를 오픈 액세스 과학저널 '프런티어스(Frontiers)' 식물과학 분야에 실었다.

연구팀은 사과 열매가 장미과의 체리나 라즈베리 등과 달리 새가 먹고 씨앗을 퍼뜨릴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진화했으며, 이는 곰이나 사슴, 말 등 고대 대형 동물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마지막 빙하기 이전에는 많았던 이런 큰 동물 중 상당수가 사라진 이후에는 씨앗이 널리 퍼지지 못했으며 사실상 고립되다시피 했다.

이때 인간의 이동이 잦아지면서 사과도 유라시아로 퍼져나가게 됐으며, 접붙이기 등의 교잡과 전정 등으로 사과 크기도 더 커지게 됐다. 현대 사과는 유전자 분석 결과, 적어도 4종의 야생 사과가 섞여 있으며 유전 물질의 상당 부분은 톈산(天山)산맥 고대 무역로 중심부에서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곡물 등이 긴 세월에 걸쳐 선택압(selection pressure)이 작용하고 우수한 품종의 씨앗이 확산하며 진행되는 일반적인 재배화 과정과는 차이가 있다.

사과는 이런 과정보다는 접붙이기 등을 통해 신속하게 재배화 과정이 이뤄졌으며, 사과 씨앗을 심었을 때 원래 사과와는 다른 '꽃사과(crabapple)'가 종종 달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지적됐다.

연구팀은 수천 년에 걸쳐 경작하며 인간의 선택압으로 재배화가 이뤄지는 작물이 있는가 하면 교잡으로 형태가 급격히 변하는 것도 있어 인류의 재배화 과정를 하나의 모델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무수히 많은 모델이 있다면서 그중 사과는 멸종한 대형 동물의 먹이 활동과 실크로드 상인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omn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