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탈리아 와인 명장으로 우뚝 선 입양인 철규 펠로소

입력 2019-05-26 07:00
[인터뷰] 이탈리아 와인 명장으로 우뚝 선 입양인 철규 펠로소

권위있는 품평회서 잇단 수상…300년된 나무 되살려 와인 생산

"11개월 때 입양돼 한국 기억 없지만 한국인 특유의 근성 자각"

"韓·伊, 제가 만든 와인으로 건배하면서 우정 나누면 기쁠 것"

(아오스타[이탈리아]=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피는 못 속인다고 하잖아요. 나이가 들수록 끈기와 성실, 열정 같은 한국인 특유의 근성이 제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만든 와인을 매개로 저를 낳아준 한국과 키워준 이탈리아를 좀 더 가깝게 잇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탈리아 북서부의 도시 토리노에서 북쪽으로 차를 몰고 1시간 반쯤 가면 알프스산맥의 최고봉 몬테 비안코(불어로는 몽블랑)를 지척에 둔 도시 아오스타에 닿는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발달한 이 도시는 높은 해발고도, 비가 적고, 병충해에 강한 기후를 갖춘 덕분에 질 좋은 포도와 와인 산지로도 이름이 높다.



아오스타 일대에서 포도밭을 직접 일궈 최근 자신의 이름을 내건 포도주를 선보이기 시작한 한국 입양인 출신의 안드레아 철규 펠로소(46)가 최근 유럽의 권위 있는 와인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와인 업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와인인 '푄(Foehn) 2016'으로 작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최대의 와인품평회 'AWC'와, 프랑스의 권위 있는 콩쿠르 '질베르 가이야르'(Gilbert Gaillard)에서 각각 은메달을 수상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또한, 수령 300년이 넘은 이탈리아 최고(最古)의 포도나무를 되살려 와인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몇 년 전 공영방송 RAI, 유력 일간 라레푸블리카 등에 소개되면서 그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전국적인 조명을 받기도 했다.

최근 아오스타에서 철규 펠로소 씨를 직접 만나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본명이 강철규인 그는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11개월 때 이탈리아로 입양돼 아오스타의 양부모를 만났다고 한다.

양아버지는 와인 판매 등을 하는 사업가였고, 그에게 인생의 롤모델이 되어준 외할아버지는 와이너리를 직접 운영하던 신망 두터운 지역 유지였던 터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포도 농사와 와인에 관심을 두게 됐다.

특히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한국과 동양의 장점을 늘 강조한 덕분에 많은 입양인이 느끼는 정체성 혼란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가 아오스타에 도착한 지 2년 후 양부모가 한국에서 여자아이를 또 입양한 덕분에 여동생이 생긴 것도 정서적인 안정감을 갖는 데 기여했다.

"아버지는 종이와 화약처럼 인류에서 중요한 발명품은 죄다 동양에서 발명됐다면서 저희에게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줬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동양인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성장하면서도 별로 기죽어 본 적이 없어요. 유치원 때부터 반에서 대장을 도맡을 정도였으니까요."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그는 어릴 때부터의 관심사였던 와인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20대 초반 와인 주조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는 음식과 와인으로 유명한 피에몬테 주의 도시 알바에서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를 배운 뒤 다시 아오스타로 돌아왔다.

협동조합과 다른 사람의 와이너리 등에서 일하던 그는 2015년부터 아오스타 일대의 버려진 포도밭을 재생시켜 자신의 포도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역시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은 안하려고 해서, 아오스타의 포도밭 상당수가 수년간 방치된 상태였어요. 이런 땅을 되살려 포도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포도밭의 주인들이 흔쾌히 땅을 내줬죠. 대부분 노인인 이들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스며 있는 포도밭에 다시 포도가 자라는 것만 봐도 흐뭇하다면서 사용료를 주겠다고 해도 손사래를 치더라고요."

그는 이 과정에서 이모부가 매입한 버려진 땅에서 오래된 포도나무를 발견했고, 이 나무로부터 이미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던 전설적인 '쁘띠 루즈'(Petit Rouge)라는 품종을 되살려 와인을 제조해 화제를 모았다.



아오스타가 속한 자치주인 발다오스타 지역 농업연구소의 분석 결과 수령이 300년이 넘은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 나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포도나무로 등극했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 포도나무의 일부는 로마의 대통령궁 퀴리날레 정원으로 옮겨 심어지기도 했다고 철규 펠로소 씨는 설명했다.

"버려진 농가의 담벼락에 기대어 생명을 부지하고 있던 이 포도나무를 보자마자 한눈에 사랑에 빠졌죠.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전쟁 이전부터 이 땅에 자라고 있던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이 포도나무를 다시 번성시켜서, 와인으로 만드는 게 제 사명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정성 끝에 300년이 넘은 나무는 그의 포도밭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었다.

그는 수확한 이 열매들의 발효와 숙성 작업을 끝내고 최근 '모나야 300'(Monaja 300)이라는 이름의 와인을 출시해 아오스타와 피렌체 등지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모나야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인 외할아버지의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와이너리의 상표를 외할아버지의 이름과 자신의 한국에서부터의 이름인 '철규'의 초성 'ㅊ'을 결합해 붙였다.

"너무 어릴 때 떠나와 한국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저는 누가 봐도 외모부터 한국 사람이잖아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라는 건 제 운명이자 본질이에요. 한국인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제 이름의 한글 초성 'ㅊ'을 상표에 넣기로 했죠."



"또한, 모나야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외할아버지의 이름입니다. 할아버지는 궂은일에 앞장서면서 공동체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해서 생전에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고, 이런 점을 인정받아 나라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은 분이었어요. 할아버지를 본받아 제 와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싶다는 소망이 상표 속에 들어 있어요."



방치된 땅에 다시 포도나무를 자라게 하고, 포도를 수확해 와인으로 제조하느라 그는 몇 년간 친구들과 저녁 시간에 간단히 술 한 잔 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고,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까만 때가 낀 손톱과 굳은살이 배긴 손에서 그동안의 고된 노동이 짐작됐다.

포도 재배부터 와인 주조, 와인에 붙는 상표와 관련된 행정적인 일, 심지어 와인병에 상표를 부착하는 작업과 판매업자와의 연락에 이르기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일을 직접 도맡다 보니 하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해가 져 깜깜해져도 탄광에서 광부들이 쓰는 헤드 랜턴을 켜고 포도밭에서 일하는 그를 본 이탈리아인 친구들이 "너는 한국인이 맞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라고 한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이곳 사람과는 구별되는 끈기와 인내, 열정 같은 한국인 특유의 근성을 자각하면서, 내 뿌리가 어쩔 수 없이 한국과 맞닿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친부모나 친척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몰라 사실상 한국과의 물리적인 끈이 없는 상황이다.

그는 "사실 이곳에 입양된 이후 40여년 간은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면서 "2016년 여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제 안에 잠자고 있던 한국을 향한 애정이 깨어난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제 한국과 어떻게 하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하게 된다"며 "제 땀과 열정이 녹아 있는 와인을 통해 낳아준 나라 한국과 키워준 나라 이탈리아를 좀 더 가깝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 이름을 건 와인 생산이 본궤도에 오르면 이제 제가 만든 와인을 들고 한국도 좀 더 자주 찾으려 합니다. 한국인들이 제 와인을 마시면서 행복감을 느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의 친부모님도 제가 만든 와인을 드실 수 있지 않을까요. 또, 한국과 이탈리아 양국 국민이 제 와인으로 건배를 하면서, 서로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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