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르웨이서 95년뒤 공개할 소설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달(종합)

입력 2019-05-26 12:00
수정 2019-05-26 12:12
한강, 노르웨이서 95년뒤 공개할 소설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달(종합)

오슬로 '미래도서관 숲'에서 전달식…원고 '흰 천'에 싸서 봉인

2114년 공개…"숲과의 결혼, 재탄생 기다리는 장례식, 긴 잠을 위한 자장가"

(오슬로[노르웨이]=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 '미래도서관'(Future Library)으로부터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소설가 한강이 25일(현지시간) 한 세기 뒤에 출간할 미공개 소설 원고를 재단 측에 전달했다.

2014년 시작한 미래도서관 사업은 100년간 매년 1명씩 작가 100명의 미공개 작품을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 숲에 100년간 심어둔 나무 1천 그루를 사용해 2114년 출판하는 프로젝트다. 한강은 다섯 번째 참여 작가이며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이다. 약 100년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는 95년 뒤 출간이다.

한강은 이날 오슬로 외곽 '미래도서관의 숲'에서 열린 원고 전달식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흰 천으로 미공개 '한글 원고'를 싸맨 뒤 '미래도서관 프로젝트'를 만든 스코틀랜드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에게 넘기고 제목을 발표하는 의식을 가졌다.

이날 한강이 공개한 소설 제목은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

분량과 내용, 주제의식 등은 모두 비밀로 한 채 원고가 봉인돼 오슬로 도서관에 보관된다.



한강은 흰 천을 한국에서 가져와 원고를 봉인한 이유에 대해 "마치 내 원고가 이 숲과 결혼하는 것 같았고, 또는 바라건대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작은 장례식 같았고, 대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세기의 긴 잠을 위한 자장가 같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흰 천이 신생아를 위한 배냇저고리, 장례식 때 입는 소복, 이불 홑청으로 쓰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작별할 시간(This is time to say good bye)"이라는 말로 소감을 마쳤다.

한강은 최신작 일부분을 노르웨이 소녀와 함께 낭독하고, 미래도서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을 때 발표한 소감문도 다시 한번 읽었다.

"마침내 첫 문장을 쓰는 순간, 나는 백 년 뒤의 세계를 믿어야 한다. 거기 아직 내가 쓴 것을 읽을 인간들이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가능성을. 인간의 역사는 아직 사라져버린 환영이 되지 않았고 이 지구는 아직 거대한 무덤이나 폐허가 되지 않았으리라는, 근거가 불충분한 희망을 믿어야만 한다."

한강은 '100년 동안의 기도'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묻자 "만약에 기도라는 것이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 무언가 애써보려는 몸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이 프로젝트도 그런 기도이고, 100년 동안 죽고 태어나는 많은 사람이 계속해나가는 어떤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패터슨은 연합뉴스를 비롯한 기자들과 만나 한강을 '올해의 작가'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한강은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다. 인류와 존재, 아름다움, 비애에 대해 매우 명료하고 아름답게 말한다"면서 "그의 글은 매우 친밀하고 우리 안으로 날카롭게 파고 들어온다. 매우 시적이면서 정신적 상처를 다룬다. 그의 작품은 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한강의 원고 전달 의식을 언급하며 "그는 가장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이날 행사는 모인 사람들이 30초 동안 침묵한 채 '노르웨이의 숲' 바람 소리, 새 소리, 벌레 소리를 듣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행사에는 오슬로 시장과 재단 관계자, 노르웨이와 한국 언론 등을 비롯한 내외신 언론, 오슬로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한강은 이어 오슬로 공공도서관으로 이동해 영국 BBC 출신 독립언론인 로지 골드스미스와 이번 행사를 주제로 대담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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