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혈질 트럼프 천적으로 부상한 '냉정' 펠로시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다혈질에 자존심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가 폭발했다.
연초 '셧다운'(정부 업무 일시 정지) 건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온 민주당 지도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 대해 급기야 지금까지 자제해온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내뱉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에 대해 지금까지 자제해왔던 최소한의 선을 넘어 막말을 쏟아낸 것은 5개월 전 백악관 회합에서 셧다운 충돌을 빚은 이후 계속된 마찰로 트럼프 대통령의 좌절이 누적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인프라, 탄핵 등 현안 외에 한편으로 정작 트럼프의 분노를 촉발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 자신과 너무나 대조적인 펠로시 의장의 냉정함과 침착함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평소 우회적 접근방식으로 알려진 펠로시 의장의 느긋한 방식이 트럼프 대통령을 더 자극해 대통령 스스로 자제불능의 사태에 빠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펠로시 의장은 잇따른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대결'을 통해 야당 지도자로서의 존재감과 함께 '상대하기 힘든' 트럼프 대통령의 천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초 셧다운 사태 당시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에 KO 패를 안겨준 펠로시 의장은 이후 계속된 트럼프 대통령과 팽팽한 대결을 통해 한편으로 민주당의 결속을 강화하는 한편 지도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정치적 수완도 보여주고 있다.
CNN은 23일 펠로시 의장의 우회적이면서 침착하고 냉정한 접근법을 빗대 '그늘의 여왕'((Queen of shade)으로 지칭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펠로시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그의 권한이 무한이 아님을 상기시켜줬다"면서 펠로시 의장이 의회는 물론 백악관 회합에서조차 자신만의 상당한 권한을 과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CNN은 열광하는 지지자들의 환호에 익숙해진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펠로시 의장은 반대와 함께 상대방을 좌절시키는 풍부한 전략을 갖고 있다면서 펠로시 의장이 설전의 와중에서 마치 상대방을 동정이라도 하듯 '트럼프를 위해 기도할 것' '가족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여유를 보인 점을 지적했다.
CNN은 '트럼프가 씩씩대고 있는 동안 펠로시 의장은 차분히 부채를 부치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펠로시 의장은 미친 게 아니라 단지 실망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CNN은 펠로시 의장이 '6년 사이 5자녀를 가진 여성으로서 다진 트릭'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갖지 못한 냉정함과 절제를 갖추고 있으며 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이 가진 (하원의장으로서) 정치적 권한과 함께 개인적 부(富), 정치가(家)로서의 배경 등에 대해 경외심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뮌헨 국제안보회의 참석 후 펠로시 의장이 귀로에 유럽연합(EU)과 나토가 있는 브뤼셀에 잠시 들르자 미 하원의장 방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많은 보도진이 몰려들었다.
셧다운 직후 '미 정계의 실세로 부상한' 펠로시 의장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당시 펠로시 의장은 보도진에 "미국엔 트럼프만 있는 게 아니다"고 일갈했다.
트럼프-펠로시 설전은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미지에 타격을 가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제력을 잃고 분노를 분출함으로써 정치 지도자로서 신뢰할 수 없고 충동적이며 협상이 불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당내에 상당한 카리스마와 함께 당 대표를 연임하면서 초선의원들의 패기 넘친 진보적 아이디어도 포용하는 등 리더쉽을 발휘해온 펠로시 의장은 이번 '대결'을 통해 당내 입지가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설전을 통해 펠로시 의장에 큰 선물을 준 셈이 됐다고 논평했다.
민주당의 댄 킬디 하원의원(미시간)은 "펠로시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현명하고 강인하며 이러한 점들이 트럼프를 괴롭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트럼프는 '부풀려진 자아(Ego)와 축소된 윤리의식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화당 의원은 "한마디로 재앙"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의 손에 놀아난 것"이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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