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최고 정치명문 네루-간디 가문, 총선 참패로 '흔들'
네루 증손자 라훌 간디 INC 총재, 2014년 이어 모디에 또 패배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인도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현지 최고 정치 명문 네루-간디 가문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69) 총리가 이끈 인도국민당(BJP)의 압승이 확실시되는 반면 네루-간디 가문이 이끄는 인도국민회의(INC)는 지난 총선에 이어 참패 수준의 성적표를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 기간 내내 모디 총리와 각을 세우며 야당을 대표한 인물은 라훌 간디 INC 총재다.
19세기 설립된 인도 최대 사회단체이자 독립운동 단체 INC는 1947년 해방 후 정당으로 변신해 지난 70여년간 인도 정치를 좌지우지했고, 무려 50여년간 집권당으로 군림했다.
특히 INC를 주도한 '네루-간디 가문'의 역사는 곧 인도 현대 정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와할랄 네루가 초대 총리를 역임했고 그의 딸 인디라 간디, 인디라의 아들 라지브 간디 등 총리 세 명이 이 가문에서 나왔다.
1991년 라지브 간디가 암살당한 후에는 그의 아내 소냐 간디가 인도 정치의 막후 실력자로 자리매김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가 네루 초대 총리의 증손자이자 소냐 간디의 아들인 라훌 간디다.
이처럼 막강한 가문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라훌 간디 총재는 2014년 총선에서 INC 총리 후보로 나서서 모디 총리에 완패했다.
연방하원 543석 가운데 역대 최저인 44석을 얻는 수모를 당하자 "네루-간디 가문에서 INC 정당원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첫 번째 인물"이라는 혹평까지 쏟아졌다.
2017년 12월 INC 총재에 취임했지만, 존재감은 여전히 약한 상태였다.
카리스마가 약하고 성숙하지 못한 '명문가 도련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라훌 간디 총재는 바닥 민심을 훑고 BJP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는 힌두사원 등을 방문하며 입지를 다져갔다.
방산 비리, 농촌 저소득 문제, 일자리 창출 실패 등 BJP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모디 총리를 궁지로 몰았다.
지난해 12월에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BJP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중부 3개 주 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것이다.
덩달아 총선 판세도 요동쳤다. 무난히 재집권에 성공하리라고 여겨졌던 모디 총리의 위상이 크게 흔들렸다.
이어 네루-간디 가문은 간디 총재의 여동생 프리양카 간디 바드라를 정계에 데뷔시키는 승부수를 던지며 정권 교체 의지를 불태웠다.
프리양카는 오빠보다 더 카리스마가 있고 대중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어서 네루-간디 가문의 입지는 더욱더 강해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 2월 파키스탄과 군사충돌이 빚어지면서 안보 이슈가 민생 등 다른 이슈를 모두 집어 삼켜버리고 말았다.
모디 총리는 이를 통해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앞세웠고 지지율이 급등했다.
라훌 간디 총재는 전국 곳곳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했고, 프리양카는 인도 최대 주(州)인 우타르프라데시의 동부를 맡아 표밭을 누볐지만 원하는 수준의 표심을 얻지는 못했다.
INC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부패와 무능으로 인도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이미지를 희석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라훌 간디 총재는 가문이 대를 이어 물려받은 우타르프라데시의 자신의 지역구 아메티에서의 선거에서마저 패배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는 남부 케랄라주의 다른 선거구에서는 어렵사리 승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에서는 한 후보가 여러 지역구에 출마할 수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네루-간디 가문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간디 총재의 성은 인디라가 페로제 간디와 결혼하면서 바뀐 것으로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와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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