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캠퍼스 외벽붕괴 참변 '남의 일 아냐'

입력 2019-05-23 15:54
[르포]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캠퍼스 외벽붕괴 참변 '남의 일 아냐'

툭 건드렸는데 콘크리트 조각 우수수…대학마다 위험등급 수두룩

못 믿을 맨눈 안전진단…대학 당국, 위험등급 나와도 공개 안 해

초·중·고는 공개, 대학은 교육부 보고만…"구성원에게 알려야"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김재홍 김선호 기자 = 23일 오후 한국해양대 해사대학 뒤편 외벽은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진 듯한 균열이 군데군데 보였다.

일부 외벽은 콘크리트 벽체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 철근이 붉게 녹슨 채 방치되고 있었다.

한국해양대 상징인 해사대학은 보강공사가 이뤄진 정면 외에 벽면 곳곳에 큰 갈라짐이 발생한 상태였다.

손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콘크리트 조각이 부서지는 곳도 있었다.

1970년대에 경남 진해에서 현재 부산 영도구 조도로 이전한 한국해양대에서 해사대, 입지관(옛 해사대 승선생활관), 평생교육관(옛 도서관)이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대학 측은 준공 40년이 지난 이 건물에 4년마다 정밀안전진단을 해 일부 부재에 보수·보강이 필요한 C등급(보통)을 받았지만, 학생들의 불안은 크다.

해사대 한 재학생은 "평소 멀쩡했다던 부산대 미술관도 사고가 났는데 해사대 건물은 갈라지고 터진 곳이 눈에 보여 더욱 무섭다"고 말했다.



동아대는 1966년 건립돼 53년 된 구덕 캠퍼스 의과대학 강의동을 비롯해 40년 이상 건물이 9개다.

15개 건물은 2016년 교육부 지침에 따른 정밀점검 결과 모두 보조 부재에 가벼운 결함만 있는 B등급(양호)을 받았다는 것이 대학 설명이다.

동의대는 전체 66개 건물 중 상경관, 법정관, 1·2인문관을 포함한 10개가 지은 지 30년 이상 됐다.

이 건물들은 올해 정밀점검 결과 전부 B등급을 받았다.

부산대 장전 캠퍼스 109동 건물 중 44%가량이 30년 이상 된 노후건물이다.

이 중 제9공학관 등 23개 건물이 C등급, 예술관이 긴급 보수·보강이 필요한 D등급을 받은 상태다.

지난해 정밀점검에서 B등급을 받은 부산대 미술관은 5개월 만에 외벽이 무너져 내려 안전진단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동아대를 비롯한 다수 대학이 부산대 미술관 외벽 붕괴사고 이후 벽돌 외장재를 사용한 건물을 점검했지만, 외벽 내부를 정밀하게 보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여전하다.



대학건물은 그동안 정밀안전진단 대상인 40년 이상 된 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교육부 지침에 따라 육안에 의존하는 정기안전점검을 받아왔다.

지난해 1월에서야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시설물안전법)이 개정되면서 건립 15년 이상, 연면적 1천㎡ 이상 학교시설만 3종 시설물에 포함돼 안전점검 의무대상이 됐다.

하지만 육안으로 진행되는 정기안전점검과 일부 계측기를 활용하는 정밀점검만을 받을 뿐이다.

부산대는 2017∼2018년 전체 캠퍼스 151개 건물 중 69개 건물에 개교한 지 73년 이래 처음 정밀점검을 시행했을 정도였다.

현행 시설물안전법은 정밀점검이나 정밀안전진단 때 건물 외관을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외장재 등 비구조재에 대한 구체적인 점검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상호 부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콘크리트, 철골 등 주 구조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천장재, 외장재 등 비구조재에 대한 안전점검은 부족해 보완이 필요하다"며 "최근에는 외장재와 건물을 고정하는 연결재를 강화하고 있지만, 예전 건물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올해 2월 국무조정실과 국토교통부의 점검 결과에서 드러났듯 부실하게 진단하거나 시설물 결함을 방치하는 몇몇 안전진단업체 사례도 적발돼 안전점검 결과를 마냥 믿기도 어려운 상태다.

대학이 건물 안전점검을 하더라도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 안전불감증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는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학교안전법)에 따라 교육감이나 학교장이 안전점검이나 정밀안전진단 결과를 교육청이나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대학건물은 학교안전법에 포함되지 않고 시설물안전법에도 관련 규정이 없어 대학은 안전점검 결과를 감독기관인 교육부에만 전달하면 될 뿐이다.

이렇다 보니 교직원이나 학생이 자신이 생활하는 건물 상태도 모르고, 학교는 예산 문제 등으로 보수·보강 작업을 미룰 여지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병윤 동의대 건축학과 교수는 "위험등급이 나온 건물은 구성원이 알도록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대학도 건물 안전등급이 공개돼야 예산을 마련해 빠른 조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win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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