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지붕부터 심장까지…속살 보인 DDP(종합)
자하 하디드 설계한 '우주선' 개관 5주년 맞아 언론 공개
4만5천장 알루미늄 외장 패널 모두 제각각…"비정형 건축의 오리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모두 머리와 발 조심하세요."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자, 끝없는 은빛 '평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몸을 옭맨 하네스(안전벨트)를 알루미늄 지붕 위 강철줄에 단단히 고정한 뒤 발을 뻗는 순간, 우주선 표면을 걷는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동대문 일대에 들어선 대형 쇼핑몰들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평원'의 한쪽 끄트머리에서는 사막에서 주로 자란다는 세덤 정원이 자리해 있었다.
알루미늄 패널 4만5천133장으로 뒤덮은 곡선형 외관 때문에 '우주선'으로 불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올해 개관 5주년을 맞았다. 운영기관인 서울디자인재단은 개관 5주년을 맞아 지금껏 외부에 공개한 일이 없던 DDP 일부 공간을 23일 언론에 펼쳐 보였다.
동대문운동장을 허문 자리에 들어선 DDP는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여성 최초로 수상한 자하 하디드(1950∼2016)가 설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건립 당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각종 패션쇼와 전시, 회의를 유치하며 문화예술 허브로 부상한 DDP를 다녀간 인원은 4천200만 명. 주변 풍경과 역사성을 껴안지 못했다는 일부 비판을 고려하더라도, 서울 명소로 칭하기에는 손색없는 수치다.
DDP는 크게 알림터와 배움터, 살림터, 디자인장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 5개로 나뉜다. 개관 멤버인 박진배 공간운영팀장이 안내한 이날 프레스투어는 살림터 지하2층 종합상황실에서 시작했다. 소방·안전·조명 등 시설제어시스템과 CCTV 450개의 통합관제시스템을 갖춘 곳이다.
종합상황실 뒷문을 열면 전기실과 기계실로 연결된다. DDP의 월별 전기 사용량은 70만 와트 수준으로, 전기세는 약 1억 원이다.
전기실·기계실이 DDP '심장'이라면, 각종 케이블이 동맥처럼 이어지는 통로 끝에 자리한 풍도(바람길)는 '기관지'다. DDP는 외부 공기가 유입되는 이 공간을 전시장 등 콘텐츠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 중이다.
DDP는 세계에서 가장 큰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다.
건물을 거대한 우주선처럼 보이게 한 4만5천133장의 알루미늄 외장 패널은 두께만 4mm로 동일할 뿐, 규격·곡률·크기가 전부 다르다. 제각각인 패널을 조립해 최소 기둥으로 지탱한 데는 국내외 다수 공항을 시공한 (주)스틸라이프 공이 컸다.
박 팀장은 "현대 건축산업의 가장 큰 특징이 대량생산·대량제작·대량조립인데 DDP패널은 모두 다 다르다"면서 "이러한 비정형 건물은 건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예"라고 설명했다.
"한 시대에 기념비적인 건물이 하나 등장하면, 다른 건물들이 이를 따라갑니다. DDP는 비정형 건축의 '오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DP를 찾은 외국 문화계 인사들이 하나같이 환상적이라고 말합니다."
5년 만에 공개된 알루미늄 지붕은 프레스투어 하이라이트였다.
하디드는 DDP를 설계할 당시 대자연을 파노라마처럼 담아낸 조선 후기 이인문 '강산무진도'에서 영감을 받았다. 건축 과정에서 층고가 높아지면서 시민이 직접 지붕 위를 걷는 안은 무산됐으나, 이날 투어에서는 그림처럼 펼쳐진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시민 88명이 총 4개 코스를 경험하는 투어 프로그램 '다시 보는 하디드의 공간'은 24일부터 이틀간 진행된다.
자하 하디드 사무소에서 근무했던 젊은 건축가 이정훈이 이끄는 '새로운 질서의 패러다임, 자하 하디드' 코스에서는 어울림광장과 알림터, 살림터, 잔디언덕 등을 돌아보며 DDP의 건축사적 의미와 하디드가 제시한 새 패러다임을 듣는다.
'DDP의 백도어를 열다'(삼우설계)와 '의자를 생각하다, DDP 소장품 탐색'(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DDP를 둘러싼 120년의 시층(時層)'(문헌학자 김시덕) 코스도 준비돼 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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