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고 前교무부장 징역 3년6월…"문제유출, 교육신뢰 저하"(종합)

입력 2019-05-23 11:46
수정 2019-05-23 15:41
숙명여고 前교무부장 징역 3년6월…"문제유출, 교육신뢰 저하"(종합)

"딸들이 모종 경로로 답안 입수…그 경로는 아버지라고밖에 볼 수 없어"

'열심히 공부한 결과' 항변에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있다…진정한 실력 의심" 반박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이기홍 판사는 23일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모씨의 업무방해 혐의 전체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두 학기 이상 은밀하게 이뤄진 범행으로 인해 숙명여고의 업무가 방해된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며 "대학 입시에 직결되는 중요한 절차로 투명성과 공정성을 요구받는 고등학교 내부의 성적처리에 대해 다른 학교들도 의심의 눈길을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로써 국민의 교육에 대한 신뢰가 저하됐고, 교육 현장에 종사하는 교사들의 사기도 떨어졌다"며 "그럼에도 범행을 부인하며 경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증거를 인멸하려 하는 모습도 보여 죄질에 비춰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고교 내부의 정기고사 성적의 입시 비중이 커졌음에도 그 처리 절차를 공정히 관리할 시스템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도 사건이 발생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짚었다.

또 "딸들이 이 사건으로 학생으로서 일상을 살 수 없게 돼 피고인이 가장 원치 않았을 결과가 발생했다"며 검찰의 구형량인 징역 7년보다는 낮은 형을 선고했다.

현씨는 숙명여고 교무부장으로 근무하던 2017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지난해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5회에 걸쳐 교내 정기고사 답안을 같은 학교 학생인 쌍둥이 딸들에게 알려줘 성적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쌍둥이 중 언니는 1학년 1학기에 전체 석차가 100등 밖이었다가 2학기에 5등, 2학년 1학기에 인문계 1등으로 올라섰고, 동생 역시 1학년 1학기 전체 50등 밖이었다가 2학기에 2등, 2학년 1학기에 자연계 1등이 됐다.

현씨와 두 딸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오직 공부를 열심히 해 성적이 오른 것 뿐"이라며 이런 혐의를 일체 부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전모가 특정되지는 않고 있지만,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존재한다"며 "두 딸이 정답을 미리 알고 이에 의존해 답안을 썼거나 최소한 참고한 사정이 인정되고, 그렇다면 이는 피고인을 통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혐의 전부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혐의를 입증할 정황으로 ▲ 현씨의 정기고사 답안에 대한 접근 가능성 ▲ 정기고사를 앞두고 현씨가 보인 의심스러운 행적 ▲ 딸들의 의심스러운 성적 향상 ▲ 딸들의 의심스러운 행적 등 4가지를 들었다.

우선 현씨가 정기고사 출제서류의 결재권자이고, 자신의 자리 바로 뒤 금고에 출제서류를 보관하는 데다 그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던 만큼 언제든 문제와 답안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현씨는 정기고사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 주말 출근을 하거나 초과근무 기재를 하지 않은 채 일과 후에도 자리에 남아 있었다면서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금고를 열어 답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쌍둥이 딸의 성적이 같은 시점에 중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급상승한 것을 두고도 재판부는 "진정한 실력인지 의심스럽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기고사 성적과 달리 모의고사나 학원 등급평가에서는 성적 향상이 이뤄지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이어 "고교 3학년이 아니면 모의고사에 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있어 그런 성적 차이를 결정적인 부정행위 정황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지문을 독해하는 국어나 평소 실력이 중요한 수학 등 과목에 한정해도 정기고사는 교내 최상위권인데 비해 모의고사 등의 성적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했다.

시험지 위에 깨알같이 작고 연한 글씨로 답안을 적어 두거나, 제대로 된 풀이 과정도 없이 고난도 문제의 정답을 적거나, 서술형 답안에 굳이 필요 없는 내용을 교사의 정답과 똑같이 적거나, 시험 직전 정답이 바뀐 문제에 두 딸이 똑같이 정정 전 정답을 적어 틀린 사실 등은 두 딸의 의심스러운 행적으로 꼽혔다.

이런 의심스러운 행적은 특히 두 딸이 정답을 미리 알고 활용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중요한 정황이라고 재판부는 봤다.

쌍둥이 동생만 홀로 만점을 받은 물리1 과목에서 고난도 문제의 풀이 과정이 없는 것에 대해 "1년 전에는 풀이과정을 쓰며 풀어도 만점을 받지 못하던 평범한 학생이 1년 만에 단지 암산만으로 만점이 될 천재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또 깨알같이 적어 둔 정답이 가채점을 위한 것이었다는 현씨 측의 주장에도 "가채점에서는 문제마다 맞았는지를 표시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굳이 정답을 적어두고 다시 채점하는 이중의 수고를 했다는 것은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게다가 아무 곳에나 적어두거나 중간에 답안이 끊기는 점 등은 납득할 수 없다"며 배척했다.

재판부는 "증거를 보면 딸들이 매번 정기고사 전에 모종의 경로로 답안을 입수했고, 그것을 암기해 정기고사에 활용했고, 그 결과 성적 향상을 이뤘다는 사실이 넉넉히 입증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렇다면 그 모종의 경로는 피고인을 통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출제서류를 보고 답안을 유출한 뒤 딸들에 전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이에 대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열어 둘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딸들과 공모해 범행을 했다는 사정도 추인된다"고 밝혔다. 현씨의 두 딸은 이 사건으로 가정법원에서 소년범 재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시민단체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이날 선고 결과에 대해 "사필귀정"이라며 환영했다.

단체는 "입시비리는 채용비리, 병역비리와 함께 국민이 절대 용납하지 않는 3대 비리 중 하나로 공정사회를 파괴하고 학생들의 정직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악질적 비리"라며 "내신 비리를 뿌리 뽑으려면 수시와 학생부종합전형을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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